원거리 연애 석 달 … 현장 중계 캡처해 앨범 만든 그녀에 감동
중앙사보
2015.08.10
웨딩스토리
중앙일보 서복현 기자
지난해 5월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취재기를 처음 사보에 썼습니다. 그때 키보드를 두드리다 사진 속 여주인공과 카카오톡을 주고받던 기억이 나는군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만남은 2014년 3월 29일 이뤄졌습니다. 곽재민 선배(중앙일보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의 소개였습니다. 예비 신부는 곽 선배의 미국 버클리대 후배입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면 꼭 확인하는 게 있습니다. ‘거짓말쟁이인가, 아닌가’. 일종의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솔직한 말투에서 호감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저를 또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내숭을 피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남은 세월호 사건 때 고비를 맞았습니다. 진도에서 일주일쯤 뒤에 돌아오겠다 약속했지만, 그건 제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한 달, 두 달, 결국 석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약이었습니다. 낯을 가리는 그녀는 저와 전화로 얘기하면서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고 합니다. 고생하는 제 모습에 측은함을 느꼈다고도 했습니다. 저 역시 참사 현장에서 겪은 슬픔을 그녀를 통해 위로받았습니다. 서울에 올라오니 그녀는 현장 중계를 하는 제 모습이 담긴 앨범을 만들어 줬습니다. 정말 울컥했습니다. 그때부터 함께하는 미래를 그렸습니다.
그녀는 SBS 스포츠전략팀에서 일합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중계권을 계약합니다. 이 때문에 그녀는 한동안 직장에서 JTBC 기자(지난해 소속)와 사귄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다행인 건 둘의 대화 주제가 풍부해 서로의 회사 기밀을 궁금해 할 틈이 없다는 겁니다.
현장에서 바쁘게 뛰다 보면 젊음이 아깝게 타들어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세월이 너무 빠르게 스쳐가는 것 같아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녀를 생각하면 아쉬움도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매순간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서복현 기자·중앙일보
서복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