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목소리’ 아프다고 멈출 수 없었고, 외면할 수 없었다
중앙사보 2019.03.07

JTBC와 중앙일보의 기사들이 연일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미투’를 최대 이슈로 만들었던 JTBC의 젊은 기자들은 지난달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기자상을 받으면서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런가 하면 중앙일보의 최은경 기자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현실을 심층취재, 보도한 ‘옐로하우스 비가(悲歌)’ 시리즈로 언론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들로부터 취재 뒷얘기와 소회를 직접 들어봤다.


제50회 한국기자상 받은 JTBC ‘미투팀’의 수상기


‘성추행을 당한 검사가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그 검사가 누군지,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진 않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검찰 내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습니다. 바로 그 검사였습니다.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서 검사가 직접 출연하겠노라고 밝혔고, 그때까진 이 인터뷰가 얼마나 큰 파문을 불러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방송에 현직 검사가 성추행 경험을 고백하기 위해 출연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풍문처럼 떠돌던 이야기는, 서지현 검사가 나서겠다고 결심한 순간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마침 그날 큐시트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배정된 시간은 약 7분. 인터뷰가 나가는 동안 취재진도 이야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서 검사의 용기와 분노, 침착함이 돋보인 인터뷰는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배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약 18분간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을 보고 긴급히 꾸린 ‘미투팀’ 기자들은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연속보도를 이어 나가는 것으로 그 용기에 보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용석 부장의 리더십과 임진택 팀장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저와 박소연·이지혜·신진·윤재영 기자 등은 서 검사가 지핀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후속 취재에 매진했습니다. 출연 이후 못 다한 이야기를 후속 인터뷰를 통해 담았고 성추행 가해자뿐 아니라 이를 방관한 2차, 3차 가해자들을 조명했습니다. 재발을 막고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을 실었습니다.


이 보도는 법조계에만 그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판 ‘미투’ 운동이라고도 불리긴 했지만 이전부터 외치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법조계에 이어 학계·문화계·언론계 등 목소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사례자를 섭외하고 묻힌 목소리를 끄집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비도 겪었습니다. ‘미투’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법의 테두리에서, 혹은 사회의 그릇된 시선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담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보도와는 또 다른 기준과 틀이 필요했습니다. 취재를 시작하는 단계부터 보도까지 어느 하나 녹록한 것이 없었습니다. 취재하는 과정은 곧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실행하는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누구의 이야기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이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보도해도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의혹이 쏟아지기도 했고, 의도치 않게 선정적인 이슈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피해 사례를 한꺼번에 취재하다 보니 취재진 본인이 직접 겪은 것 같은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미투’ 보도는 어느덧 양날의 칼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파급력만큼 보도에 대한 비평도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그 칼날은 우리 스스로에게 드리워지기도 했습니다. 법이 아닌 언론이 해야 하는 몫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날카로운 잣대가 세워졌고, 보도 방법에 대한 문제 제기도 다각도로 이뤄졌습니다. 보도를 할수록 어려움은 커졌습니다.


하지만 ‘미투’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운동이 아님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언론이 외면하는 사이 ‘숨겨진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다고 멈출 순 없었고, 다시 외면하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 보도로 한국기자상이라는, 분에 넘치게 큰 상을 받았습니다. 보도의 ‘역사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심사평이 있었습니다. 그 역사에 함께했다는 점이 감사하고 송구하면서 두렵기도 합니다. 미투의 ‘역사성’은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가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은 우리 모두를 채찍질하는 격려이자, 우리 모두에게 주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아 기자·JTBC 사회3부

김지아 기자
첨부파일
이어서 읽기 좋은 콘텐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