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으로 듣게 된 '민주당 비례정당' 대화 … 기민한 대처로 단독 보도
중앙사보 2020.05.14

사장상 1급 수상 중앙일보 뉴스룸 정치팀의 특종 뒷얘기


중앙일보 뉴스룸 정치팀이 4월 16일 열린 중앙일보 사장상 시상식에서 2월 28일자 단독 기사 ‘“탄핵 막으려면···” 민주당 5인 마포서 비례당 결의’로 사장상 1급을 수상했습니다. 이에 사보에서 정치팀 정진우 기자의 수상 소감을 전합니다.


“저쪽(미래통합당)에서 저렇게 나오면 우리도 대응할 방법은 많습니다.”


지난 2월 마포구의 한 한정식집. 한 정계 인사와 저녁식사를 하던 중 옆방에서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정치권의 혼란을 촉발한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에 대한 비판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은 술기운이 오른 듯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미래통합당에 맞서 자신들도 비례정당 카드를 꺼내들자는 ‘도원결의’를 맺었습니다.


당시 대화의 주인공은 이인영 원내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인사들이었습니다. 대화 맥락상 이들은 이미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키로 결론을 낸 상태에서 방법론을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수차례에 걸쳐 ‘원칙’을 강조하며 비례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직접 비례정당을 창당하는 방법과 범여권 내에서 세력을 규합해 비례연합정당을 추진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습니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대화 자체가 특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습니다. 곧장 저녁 자리에 함께한 선후배들과 내용을 공유하는 한편 대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맥락을 파악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식사 자리가 끝나고 식당을 나오자 한 선배가 다소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했습니다. “빨리 회의 장소 잡아야겠다. 각자 들은 대화 내용 메모하면서 최대한 복기해 내용별로 추려보자.”


밤 10시가 넘은 시각, 카페에 모여 각자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퍼즐을 맞추며 대화를 재구성했습니다. 회의 도중 “대통령 탄핵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민주당 핵심 인사 5명이 마포에 모여 비례정당을 결의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기사의 제목이 정해지던 순간입니다. 이날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이들의 대화 내용은 ‘탄핵 막으려면··· 민주당 5인 마포서 비례당 결의’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 1, 3면을 장식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이후 민주당은 “개인 차원의 의견일 뿐 당 차원의 공식 입장은 아니었다”며 비례정당 창당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등을 통해 수면 아래에서 관련 논의가 계속됐고, 결국 비례정당을 공식화했습니다. 다만 직접 창당이 아닌 소수정당과 함께 연합비례정당에 참여하는 형태였습니다.

의석 욕심에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해 ‘비례 순번 뒷순위 7석’만을 요구했고, 정당원 투표를 거치며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명분을 앞세운다 해도 “비례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던 공언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총선이 끝난 뒤 민주당 중진인 A의원은 식사 자리에서 "비례연합정당 참여가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말에 “정치란 과정도 신경 써야 하지만 그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치인의 입장일 뿐입니다. 과정의 올바름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믿음은 일견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기자로서 당연히 명심해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A의원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더 ‘과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국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감시하고 취재하겠습니다.


정진우 기자·중앙일보 정치팀

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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