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사보는 9월 22일 중앙일보 창간 56주년을 기념해 '내 친구, 중앙일보에게'를 기획했다. 중앙일보가 상암으로 이사온 뒤 처음 맞는 창간일인 만큼, 중앙일보와 동갑내기인 임직원 3명에게 56세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부탁했다. 축전을 보내온 사람은 중앙일보 이정민 논설실장, 양성희 칼럼니스트다. 특히 1965년 9월생으로 태어난 달까지 중앙일보와 같은 김회룡 그래픽팀 차장은 그림으로 축하의 뜻을 전했다. 편집자
이정민 논설실장
움베르토 에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는 '중앙일보라는 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어릴 적 아빠나 삼촌의 무등을 타보았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내 작은 키의 몇 배쯤 되는 높은 어깨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한없이 신기하고, 어떤 도전에 맞서도 두렵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지 않았던가요? "내가 더 멀리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 에코의 말 그대로 말이죠.
제가 중앙일보라는 거인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건, 말할 수 없는 행운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20대 초반, 진취적 기백 넘치는 청년 중앙일보와 만났습니다. 중앙일보는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저널리즘의 정도를 지키려 노력해왔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뒤안길을 돌아보는 56세 중년에 이르렀습니다. 반세기 넘는 인고의 세월을 통해 중앙일보는 없어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귀중한 제도이자 자산이 됐습니다. 동갑내기로서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으니 저는 중앙일보에 가장 많이 빚진 사람일 것입니다.
중앙일보의 56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더욱 탄탄한 근육질과 어깨로, 더 많은 난쟁이를 무등 태우는 더 큰 거인이 되길 기대합니다.
양성희 칼럼니스트
56세가 된 개인적 심경은 복잡미묘하지만 여기 토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언론사 생일을 자축하기가 꺼려질 정도다. 정권은 세계에 유례없는 ‘언론징벌법’을 밀어붙이며 기성 언론을 ‘가짜뉴스’의 근거지로 매도하고, 정치권이 조장한 ‘언론 혐오’에 길들여진 이들은 ‘기레기’란 멸칭으로 우리의 직업적 자존심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투쟁이 저널리즘의 가치를 꿰차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언론의 본분은 변함없을 터. 어쩌면 지난 56년간 해온 것 이상을, 시대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 기자가 됐을 때 설렘과 포부, 용기를 떠올려 본다. 더 많은 독자의 사랑과 신뢰 회복, 그리고 직업적 자긍심을 위해 노력하자. 아무쪼록 내년 생일에는 더 이상 화병 나는 일은 없고, 박수 치며 꽃다발을 안길 일만 가득하기를. 쓰다 보니 내게 쓰는 다짐의 글이 됐다. 동갑내기 중앙일보의 생일을 축하한다.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