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수고했슈~’ 손 흔들던 선배 "오랜 해외 출장 떠난 거라 믿을게요"
중앙일보 중앙사보 2022.02.10
정형모 컬처에디터를 떠나보내며

중앙일보S 선데이국 고(故) 정형모 컬처에디터의 장례식이 지난 7일 엄수됐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출발한 고인의 유해는 생전에 매일 출근하던 서소문 중앙일보 구관을 들른 뒤,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공원묘지에 안치됐다. 정 에디터는 지난해 12월 초,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두 달간 병마와 싸웠다. 신장 투석과 에크모 등 여러 치료가 이어졌지만, 모두의 바람과 달리 회복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난달 말엔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상당하다는 소식에 중앙일보S와 중앙일보 편집국 동료들이 자발적인 모금을 벌이기도 했다. 홍정도 중앙일보·JTBC 부회장도 정성을 보탰다. 회복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지난 4일 들려온 비보에 많은 선후배·동료가 슬픔에 잠겼다. 다음은 정형모 에디터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유주현 기자가 보내온 추모글. /편집자

 

 

“굿모닝~!”

 

무거운 사무실 공기를 가르며 그가 돌아왔다. 넉넉한 몸매와 푸근한 미소는 그대로다. 노심초사한 후배들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약속 잡기 바쁘다. 좀 얄밉지만, ‘과연 정형모다’ 싶다.

 

얼마 전 꿈에 나타난 정형모 부국장의 마지막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26일 마감 후 언제나처럼 ‘수고했슈~’라는 끝인사를 뒤통수로 들으며 손을 흔든 게 까마득하다. 꿈속의 안도감을 배신한 채 그는 영영 떠났고, 빈자리엔 기억만 남았다.

 

신간 서적으로 욕심껏 성벽을 쌓은 책상에 파묻혀 마감에 쫓기던 타이핑 소리, 안경을 이마에 얹고 이 잡듯 대장을 확인해 작은 오류까지 잡아내던 뼈 있는 목소리도 귓전을 맴돈다. 시니컬한 핀잔이 아프지 않은 건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알고 있어서다. 데스크가 비좁았던 그는 늘 현장으로 나갔다.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발로 뛰었다. 미술,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해박한 ‘문화기자계 왕고’였지만 늘 후배들 눈높이에서 호흡했다. 그래서 그와의 수다가 참 즐거웠다. 가무를 사랑한 그는 TV 오디션 프로를 즐겨 봤는데, 그의 품평은 편안한 아줌마 바이브였지만 오랜 내공에서 배어 나오는 촌철살인도 있었다.

 

그는 어딜 가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지칠 줄 모르고 배울 것을 찾는 ‘찐 기자’였다. 처음 보는 물건, 희한한 사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커다란 호기심으로 항상 눈을 반짝였다. 두 딸에게 “아빠는 매일 박찬호 선수가 시속 140㎞ 강속구를 던지듯 살았다”고 했다는데, 과연 그랬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그가 한땀 한땀 만든 중앙SUNDAY S매거진은 그 증거이자 그의 자부심이요, 우리의 화양연화였다.

 

그에게 많은 걸 배웠다. 생전엔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법을 가르쳐 줬고, 삶은 아이러니란 걸 일깨워 주고 떠났다. 2년 동안 함께 전쟁을 치르듯 버텨온 코로나19의 끝자락에 허탈하게 마주한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토록 좋아했던 해외 출장을 아주 오랜만에, 조금 오래 떠난 거라 믿고 싶다.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신세계의 풍광을 깨알같이 전하고자 수첩과 볼펜을 꺼내 열심히 메모하고 있을 그의 모습 눈에 선하다.

 

지금도 동굴 같은 내 옆자리에서 돌부처처럼 미소 짓고 있을 것만 같은 그의 추모 기사를 쓰게 될 줄 몰랐다. 마지막까지 일을 주고 떠난 그는 나의 ‘참부장’이다. 먼 출장지에서까지 시공을 뛰어넘는 원격 출고를 자처하던 그의 깐깐한 데스킹이 늘 야속했지만, 나를 기자로 키운 회초리였다.

 

작성 완료. 부장, 출고 안 하실 건가요. 1000자에 정형모 기자를 욱여넣기가 저도 힘에 부치네요.

유주현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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