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자 없으면 내가 가겠다” 나선 출장 … 입사 29년 차에 현장의 치열함 새삼 느껴
중앙일보 중앙사보 2022.04.07
중앙일보 김현기 순회특파원의 우크라이나 접경지역 종군 취재기

부모님께 들었던 전쟁 피란 당시의 고생 이야기를 72년 지난 2022년, 유럽 한가운데에서 내가 직접 듣고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거로만 알았는데, 때론 후퇴도 한다는 걸 절감한 출장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국가로 출장을 갈 경우 통역(코디네이터)이 출장의 절반을 좌우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출장은 행운이었다. 타사 대부분이 폴란드에서 통역을 구하다 보니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만 아는 난민을 취재하는 데 고생했다. 그런데 나를 ‘데리고 다닌’ 폴란드 한인회장님은 노어노문과 출신이라 막힘이 없었다. 그분의 단톡방도 취재의 보고였다. 키이우를 탈출하는 한국 교민들의 실시간 중계가 그 단톡방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자잘한 단독 기사가 다 거기서 나왔다. 개전 전부터 그분과 친분을 다져 온 김홍범 기자 덕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이 접해 있는 메디카 국경검문소의 난민 수송 버스 앞에 선 김현기 특파원.

취재 중 “아니 왜 거기에 가 계셔요?” “회사가 좀 너무한 거 아닌가?”란 문자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게 먼저 가라고 한 적 없다. 순회특파원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당연히 가야 한다 생각했고, “자원자가 없으면 내가 먼저 가겠다”고 했을 뿐이다. 몸이 고달프긴 했다. 내내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시차가 고약했다. 폴란드는 한국보다 8시간 늦다. 그래서 저녁 6시까지 기사를 보내려면 아침 6시부터 현장을 돌고 10시쯤 들어와 정오까지 기사를 마감해야 했다. 그러곤 현지 오후 시간에 맞춰 또 기삿거리를 찾으러 나갔다. 데스크의 압박도 모처럼 느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싫지 않았다. 꼰대 소리를 들을까 조심스럽지만,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 해도 역시 기자의 숙명은 ‘현장’과 ‘치열함’이란 걸 새삼 느꼈다. 프셰미실 국경검문소 앞에서 6일 연속 기웃거리다 얻어걸려 평소에 출입금지 구역인 우크라이나 쪽 검문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현장에 있어 가능했다. 휴대전화의 시간이 국경선상에서 우크라이나 시간(폴란드보다 1시간 빠름)으로 자동으로 바뀌는 순간 느꼈던 설렘은 수습 기자나 29년 차 기자나 다를 게 뭐 있겠는가. 자세한 뒷이야기는 냉동고에 보관 중인 폴란드 직송 들소풀향 보드카 ‘즈블로카’와 다음으로 미뤄 두겠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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