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 감독 선임 단독 보도 … 독일 ‘키커’에도 직접 기고
중앙일보 중앙사보 2023.04.06
피주영 기자의 특종 취재기 유창한 독일어와 현지 인맥 덕 대한축구협회보다도 앞선 보도

“그래서 다음 축구 대표팀 감독은 누군데?” 올 초에 만난 열이면 열 이렇게 물었다. 그때마다 “외국 감독이 선임될 가능성이 크고, 외신에선 A감독과 B감독이 거론되고 있다”는 정도로 얼버무렸다. 명색이 10년 차 축구 담당인데 “사실 누가 될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이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하며 새 감독에 대한 관심은 이전보다 더 컸다. 워낙 극비리에 이뤄졌기에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건 어려웠다.

 

상황이 이런데 지난 2월 말 태평하게 휴가를 냈다. 휴가 2일째 오전 11시에 취재원의 전화를 받았다.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낙점됐다.” 이 한마디에 부랴부랴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같은 날 또 다른 취재원으로부터는 이변이 없는 한 계약이 이뤄지고, 곧바로 공식 발표까지 나올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두근거렸다. 클린스만은 국내외 언론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측과 연락이 닿기만 하면 ‘크로스 체크’가 될 것 같았다. 다행히 독일엔 취재원이 여럿 있었다. 독일 출장마다 열심히 현지 인맥을 쌓은덕분이다. 유학하신 부모님을 따라 독일 쾰른에서 10년 가까이 살아서 독일어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오랜만에 왓츠앱(유럽의 카카오톡)에 접속해 ‘행운의 편지’를 뿌리듯 무작정 ‘클린스만 측과 연락할 방법’을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누가 보낼지 모를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레드불 한 캔을 입에 털어 넣고 감시하듯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그때 ‘드륵’ 메시지 알림 진동이 왔다. 클린스만의 대리인(에이전트 격) 연락처가 담긴 메시지였다. 클린스만의 대리인은 “협상은 상당히 진전된 상태”라며 “계약서의 세부 사항만 조율되면 클린스만 감독이 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가 같은 날 오후 7시였다.

 

곧장 클린스만이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될 거라는 사실을 온라인 기사로 단독 보도했다. 이 기사는 다음 날인 2월 23일 우리 신문 지면에도 실렸다. 타사 기자들의 연락을 받았다. 일부는 “진짜 클린스만이냐? C감독이 유력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Kicker)에서 연락이 왔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가장 먼저 보도한 기자의 글을 키커에 싣고 싶다고 했다. 물론 독일어로 쓰는 조건이었다. 키커는 103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최고 권위의 축구 전문지다. 유럽 축구의 1번지 독일에서도 가장 유명한 축구 전문가가 모인 키커에 글을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 다. 왠지 한국 축구 기자를 대표한 다는 생각까지 들어 3일 밤낮 정성 들여 원고를 완성했다. 다행히 3시간 만에 키커로부터 ‘스토리가 좋다’는 얘기를 들은 후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에 실린 피주영 기자의 원고

이번 취재는 정제원 스포츠디렉터의 지휘 아래 송지훈 차장, 박린 기자 등 스포츠팀이 도와준 덕분에 가능했다. 단독 보도와 독일 유명 매체 기고도 기뻤지만,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아서 더 값진 경험이었다.

피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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