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미흡했다" … 홍석현 회장, 기시다 '공감' 이끌어냈다
중앙일보 중앙사보 2023.06.01
일 총리 방한 맞춰 대담 준비 오염수 문제 가감 없이 전달 중앙그룹의 힘 증명한 인터뷰

지난 5월 11일 오전 4시16분, 일본 도쿄 옆 지바현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꽤 큰 흔들림이 느껴져 이른 새벽부터 잠을 설쳤다. 지진 알람에 깨어난 특별취재팀 기자들에게 가장 먼저든 생각은 이거였다. “큰일 났다. 지진 때문에 총리 일정이 바뀌어 인터뷰가 취소되면 안 되는데…”

 

중앙일보 5월 15일자 1~6면에 실린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특별대담은 이처럼 여러 난관을 뚫고 성사됐다.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후 모든 관심은 기시다 총리의 한국 답방에 쏠렸다. 모든 한국 매체가 기시다 총리와의 인터뷰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도쿄총국은 이미 기시다 총리의 방한에 앞서 수개월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인터뷰 성사를 위한 ‘네마와시(사전 물밑작업)’를 진행한 상태였다. “기시다 총리가 한국 매체와 첫 인터뷰를 한다면 중앙일보!”란 공감대도 일본 총리관저에 어느 정도 형성이 돼 있었다. 인터뷰도 20~30분 내외의 통상적 취재가 아니라 기시다 총리와 홍 회장의 1시간 가까운 ‘대담’으로 격상하자는 안이 나왔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5월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끝난 뒤인 6~7월로 예상됐던 기시다 총리의 방한 일정이 5월 7일로 대폭 앞당겨졌다. 더구나 방한 직전인 4월 29일~5월 5일 기시다는 아프리카 및 싱가포르 순방으로 일본을 떠나 있는 터. 방한 전엔 도저히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총리관저와의 핫라인을 통해 긴박한 조율이 이뤄졌고 대담 날짜는 기시다 총리의 한국 방문 직후, G7 이전인 5월 11일로 결정됐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특별대담이 지난달 11일 일본 총리 공저에서 열렸다.

 

 

대담이 결정된 후엔 일본 총리관저 측에서 유례없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담 장소를 총리의 주거 공간인 총리공저의 연회장으로 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국빈 만찬 등이 열리는 곳으로 인터뷰나 대담 장소로는 쓰인 적이 없다. 일본 기자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기시다 총리와 홍 회장이 폭넓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시간 확보 차원에서 순차통역이 아닌 동시통역으로 대담을 진행하자는 제안도 일본 측이 해왔다.

 

인터뷰 당일에도 방심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소나기로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야외 일정에 차질이 생기며 일정이 대폭 지연됐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대담 이후 중요 행사 참석까지 뒤로 미루며 홍 회장과의 대담에 큰 의욕을 보였다. 배석자도 통상 2~3명으로 제한하지만 이날은 이하경 대기자, 김현기 도쿄총국장, 이영희·김현예 특파원, 그리고 특별취재팀으로 파견된 서승욱 논설위원과 김상진(국제부), 전민규(사진부) 기자까지 총 7명이었다. 일본 정부에서도 총리의 오른팔로 불리는 시마다 수석비서관, 시카타 내각홍보관 등 주요 인사들이 배석해 대담을 지켜봤다.

 

이날 공저 대담장으로 들어오는 기시다 총리의 모습이 중앙일보 1면에 실렸는데 “총리의 이렇게 밝은 표정을 신문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로 기시다의 표정은 대담 내내 밝았다. 대담에서 홍 회장은 기시다 총리 방한 후 “사과가 미흡했다”는 한국 내 부정적인 반응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를 둘러싼 여전한 불안감까지 가감 없이 전달하고 의견을 물었다. 기시다 총리는 홍 회장의 발언에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음, 음” 하고 공감을 표했다. 대담이 끝난 뒤에도 5분가량 마주 서서 환담을 나누며 기념촬영을 했다.

 

 

 

 

여러모로 특별했던 이번 대담이 성사된 데는 중앙일보라는 매체의 힘, 그리고 지난 4년간 ‘한일 비전포럼’을 이끌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큰 역할을 해온 홍 회장의 영향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기시다 총리가 홍 회장에게 “앞으로도 귀중한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한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내에서도 극비리에 진행된 대담이라 전민규 기자는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왜 일본에 가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양복 챙겨 가라”는 말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힌트였다. 대담 기사의 방향을 잡아준 이하경 대기자와 서승욱 논설위원, 6개의 지면을 꼼꼼히 만들어준 국제부, 지면 에디터, 편집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영희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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