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속보보다 빛난 편지 보도, "저승사자 물고 늘어지겠다"
중앙일보 중앙사보 2015.06.29
타지 속보경쟁 몰두 때 간호사·환자가족 사연 취재 눈시울 붉힌 특종 이어져

“팀장님, 편지 빨리 보내주세요 ㅠㅠ” “사진은 무조건 화질 좋은 걸로 주셔야 합니다!”

 

11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기자실. 다른 회사 기자들이 메르스 속보를 챙기기 바쁜 시각, 나는 카카오톡과 전화로 한 사람만 챙겼다. 일면식 없이 전화만 몇 차례 했던 한림대 의료원 홍보팀장과 하루 종일 긴밀하게 접촉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코호트 격리(감염 우려가 있는 병동을 의료진ㆍ환자와 함께 봉쇄)된 경기 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의 간호사 편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메르스와 싸우는 의료진의 상황을 중계해주기보단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실어보자는 취지였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중환자실김현아 간호사의편지가실린중앙일보6월12일자1면.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각, 홍보팀장으로부터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가득 담은 e메일이 왔다. 모두 네 명이었다. 내용을 훑어보는데 ‘외과 중환자실 김현아 간호사’라고 적힌 글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전 지금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메르스라는 질병의 첫 사망자가 나온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편지가 나오게 된 순간이다. 강홍준 사회1부장과 이상언 보조데스크가 고칠 게 없다고 할 정도로 글은 완벽했다. 며칠 뒤 인터뷰에서 자세히 들어보니 작가를 꿈꿨고, 시나리오도 써본 ‘글쟁이’ 간호사였다. 독자를 울릴 만한 실력이 준비된 사람에게 멍석만 깔아준 셈이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선배의 눈시울을 붉힌 편지는 자연스레 종합 1면으로 전진 배치됐다.

 

편지를 넘기고 나니 사진이 문제였다. 김현아 간호사 사진을 넣어야 하는데 화질이 나쁘거나 웃고 있는 표정이라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 급기야 ‘셀카’까지 요청하며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결국 처음 받았던 저화질 증명사진으로 낙찰됐다. 1면 메인 사진은 병원 홍보팀에서 찍어 준 5메가바이트(MB) 고화질이었다. 하지만 격리된 의료진을 클로즈업하다 보니 화질이 깨져 있었다. 다행히 그들의 표정이 살아 있어 그대로 나갈 수 있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그날 하루 홍보팀장과는 아내와도 못해본 수십 번의 통화 기록, 수백 개의 카톡 대화 기록을 수립했다. 자정을 넘긴 뒤에야 기자실 문을 닫고 퇴근길에 나섰다.

 

다음날 온라인 반응은 뜨거웠다. 네이버에선 3200여 개의 댓글이 쏟아졌고, 대부분 의료진의 어려움을 몰라서 미안하고 앞으로 응원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우리 홈페이지에서도 그날 지면기사 중 클릭 수 1위를 기록했다. 오후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너무 큰 감동에 눈물이 맺힌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자신을 경기 분당에 사는 76세 구독자라고 밝힌 분은 메일로 김 간호사에게 돈을 전달해 드릴 수 없느냐는 질문도 정중히 보내왔다. TV와 인터넷 매체 상관없이 김 간호사 인터뷰와 인용 보도가 일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동탄성심병원은 물론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등 다른 의료기관에도 현수막과 손편지가 답지(遝至)하면서 메르스를 극복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마련됐다. 김현아 간호사는 “저에 대한 응원이라기보단 의료진 전체에 대한 격려라고 생각한다”며 “편지를 통해 사회적 분위기가 바뀔 수 있어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리 지면은 김 간호사 편지가 나간 뒤에도 대전 을지대병원 중환자실의 ‘편지 임종’ 등 독자들의 가슴을 향하는 기사를 연이어 보도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와 이에스더 기자를 비롯한 ‘메르스팀’ 선배들의 단독기사도 매일 같이 쏟아졌다. 타사의 모 기자는 “중앙일보가 메르스 보도의 승자”라며 부러워했다.

 

정종훈기자가 정부세종청사에서10일열린보건복지 부의메르스관련기자회견내용을기 록하고있다.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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