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자 조금 넘는, 여덟 문장을 읽으려고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은 건 그 때가 태어나서 두 번째였다. 중학생 시절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시를 외워 국어 선생님 앞에서 낭독 시험을 본 뒤 꼭 20년 만이다.
두 시간 가까이 목소리를 낸 까닭에 금방이라도 목에 염증이 생길 것 같았다. 서서 읽으면 목소리가 좋아진다는 조언에 좁은 녹음실 안에서 계속 직립(直立) 낭독을 했더니 등줄기엔 땀이 흘렀다. 7월 8일 ‘뉴스룸’ 1부에 보도된 내 생애 첫 리포트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유승민 ‘사퇴 변’이 남긴 여운’을 제작하던 모습이다. 최근 그 목소리를 한 달 만에 다시 들어보니 “너 긴장한 것 같더라”고 말한 가족의 반응이 이해됐다.
방송에 적합한 목소리를 내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다. 평소 뻐근한 목과 어깨를 풀어주려 목을 돌리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나의 모습이 화면에 그대로 잡히는 실수도 했다. 오후 2시20분 ‘뉴스현장’ 시간에 나올 리포트에선 두 문장 정도만 외우면 되는데도 왜 이렇게 안 외워졌는지…. ‘뉴스룸’에 나와 자연스럽게 카메라와 눈맞춤 하며 원고를 보지 않고 뉴스를 전하는 선후배들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방송 뉴스의 많은 것이 실로 대수로웠다.
입사 3년차(2011년) 때 JTBC가 개국하면서 ‘언젠가 혹시 방송에서 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젊은(?) 기자 축에 속하는 까닭에 잠재적 신문·방송 교류 대상자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막상 보도국으로 인사 발령이 나니 걱정이 앞섰다. 새로 적응해야 할 게 많아서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싱크(소리가 함께 녹음된 영상), 수퍼(자막), 인제스트(영상입력), MNG(현장연결)와 같은 낯선 용어부터 나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국회팀 선후배에게 도움을 구해야 했다. ‘전입고참’인 대학생 인턴에게도 안면몰수하고 물어보길 반복했다. 가장 낯선 건 취재원에게 나를 소개할 때 “중앙일보 허진입니다” 대신 “JTBC 허진입니다”고 말할 때다. 여전히 ‘중앙일보’라는 수식어가 익숙한데, 아마 ‘JTBC’라는 말이 익숙해질 때쯤에야 팀 전력에 보탬이 되는 기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낯선 것에 적응해가는 재미와 보람도 있다.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해 그동안 삼촌의 기사를 보지 못했던 조카가 이제는 방송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고 '삼촌 나온다 삼촌'이라고 말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보람뿐 아니라 책임감도 느낀다. 서울 상암동의 명소를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다. 처음에 선배들이 '읍내로 와'라고 말할 때는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이제는 읍내(상암초등학교 건너편 음식점 밀집 지역)에서 내 취향의 괜찮은 술집도 한 군데 알게 됐다.
편집국(중앙일보) 시절엔 저녁 때면 거의 매일 취재원을 만나느라 ‘뉴스룸’을 꼬박꼬박 챙겨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 뉴스의 영향력을 의심했던 것도 이제야 털어놓는다. 지금에야 우리 뉴스를 보는 사람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 TV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몇 년 만에 연락해 오는 친구가 늘고 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다가, 전날 아기를 낳고 몸조리를 하다가 내 목소리를 들었다는 지인도 있다. 점점 더 많은 시청자가 JTBC 뉴스를 볼 것이고 지금보다 더 많은 취재원이 JTBC 뉴스에 나오고 싶어할 것이다. 그 1등 방송의 길에 나도 조그만 반석을 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