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종군화가, 백남준 … 110명이 그려낸 격동의 70년
중앙사보 2015.08.24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별전
6·25 스케치, 50년 염천교 등 시대 변화상 그린 270점 전시 20일만에 관람객 10만 명 돌파
이젠 백발의 노신사가 된 6·25 참전 용사 이용훈(85) 할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18세 종군 화가가 급박했던 전쟁 상황을 묘사한 그림(김성환 ‘6·25 스케치’)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다. 이씨는 “(그림을 가리키며) 들것에 실려 나가는 병사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전쟁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를 만큼 작품이 매우 사실적”이라고 말했다.
그 뒤편에선 10대 소녀들이 한동안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쟁의 참화가 가시지 않았던 1950년대 중반, 한 어린아이가 서울 도심 길바닥에 누워 있는 사진(정범태 ‘서울 염천교’) 앞에서다. 40~50대 주부 관람객 몇몇은 산울림의 ‘아니 벌써’,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같은 옛 유행가가 흘러나오자(성기완 ‘가상 라디오-노래 따라 삼천리’) 노래에 얽힌 자신의 추억을 꺼내며 소곤소곤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1·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시민과 함께하는 광복 70년 위대한 흐름-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 전(展)의 8월 20일 풍경이다. 이 행사는 광복 70주년과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중앙일보가 7월 28일부터 선보인 특별전이다.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 평일 낮 시간에도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6일 기준으로 관람객은 누적 10만 명을 넘었다.
전시는 광복부터 현재까지 격동기를 헤쳐 온 우리 현대사를 그림과 서예·사진·설치물을 통해 되돌아본다. 현대 미술작가 110여 명의 작품 270여 점이 출품됐다. 전쟁과 분단(‘소란스러운’ 섹션), 산업화와 민주화(‘뜨거운’ 섹션), 그리고 물질과 정보가 넘치는 현재와 새롭게 펼쳐질 미래(‘넘치는’ 섹션)를 풀어놓는다. 한국인이 걸어온 70년 삶을 압축 재생(再生)시킨 듯하다. 덕분에 미술 전시장이 교육 공간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생 딸과 전시장을 찾은 주부 최미영(33)씨는 “아이에게 뜻깊은 역사 교육이 될 만한 작품이 많다”며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신도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서윤(12)양은 “친구들에게 꼭 봐야 할 전시라고 추천하겠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광복 70년 역사를 담는 만큼 작품은 풍성하다. 그중에서도 독일 뒤셀도르프대에서 활동하던 시절 백남준이 남긴 비디오아트 ‘이태백’(1988), 개발 시대의 붉은 불도저와 새마을 깃발을 담은 정창섭의 민족 기록화 ‘경제 건설’(1977)은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김환기(‘판자집’·1951), 박수근(‘할아버지와 손자’·1960), 이중섭(‘해변의 가족’·1950) 등 거장의 작품도 나왔다.
전시공간 자체가 설치 예술가 최정화의 작품이다. 여느 전시장의 흰 벽과 달리 철조망, 산업 현장의 판지, 은박지와 비닐 등을 활용해 각각의 시대 분위기를 연출했다. 개막식을 찾은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전을 이렇게 했어야 했다”면서 감탄과 아쉬움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다. 오전 10시∼오후 6시. 수·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월요일 휴관. 입장료 4000원. 24세 이하 또는 65세 이상, 대학생 무료. 02-3701-9500.
임선영 기자 이소정 과장·조인스
임선영 기자, 이소정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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