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아들과 제주 히치하이킹 … 10년 째 록 페스티벌로 바캉스
중앙사보 2015.08.24
이색 여름휴가 2제 
여섯 살배기 아들과 단 둘이 제주도 ‘무전(無錢)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의 힘’을 경험하고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걱정하는 아내를 겨우 설득했고 숙소와 렌터카를 대여하지도 않았습니다.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히치하이킹(Hitchhiking, 다른 사람 차를 얻어 타는 것)으로만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작정이었습니다. 준비물은 오직 텐트를 넣은 커다란 가방과 튼튼한 두 다리, 아무에게나 도움을 부탁할 수 있는 두꺼운 얼굴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도 여행. 첫 번째 관광지인 제주시 공룡랜드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가족 단위 여행객이어서 차를 얻어 타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아빠, 그냥 걸어가자.” 
“거기가 얼마나 먼데 걸어 간다는 거니? 택시 타고 가자.”
“원래 무전여행은 다리 아프고 힘든 거야. 그냥 걸어가자.” 아들의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던지…. 결국 택시를 부르기로 ‘합의’를 하고 카카오택시를 탔습니다. 나흘(8월 5~8일) 동안 제주도를 돌아다니며 안덕계곡·돈내코계곡·우도에서 캠핑을 했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은 근처 식당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화장실을 빌려 샤워하고 절에 찾아가 라면을 끓여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히치하이킹을 몇 차례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밤에 저와 나란히 누운 아들은 “아빠, 오늘도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지?” 하며 감사해하기도 했습니다. 걷다가 더위에 지쳐 쓴 교통비만 15만원이나 되는 ‘유전(有錢)여행’이었지만 부쩍 자란 아들의 든든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값진 여행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들이 제게 했던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아빠! 여섯살 평생에 가장 재미있던 여행이었어요.”
김보경 차장·JTBC


이 여름 휴가는 참 이상합니다. 그 흔한 산도 바다도 없습니다. 시원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열기에 이글거리다 못해 타 죽을 지경입니다. 한적하지도 않습니다. 수만 명의 사람이 몰립니다. 또 불편합니다. 화장실 한 번 이용하려면 1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해요.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점. 전 이곳을 매년 여름 찾습니다. 사흘을 연달아서요. 그것도 10년째 꾸준히. 바로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입니다. 그 어떤 관광지보다도 이곳은 저에게 소중한 휴가지이자 성지입니다. 매년 여름이면 록페스티벌이 열리는 인천 송도를 찾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괴팍한 휴가는 저만 즐기는 건 아닌가 봅니다. 7일부터 사흘간 열린 올해는 무려 10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폭염 속에서, 때로는 호우 속에서 수만 명이 한목소리를 내며 뛰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제가 록페스티벌과 연을 맺게 된 건 고교 2학년이었던 1999년. 당시 한국 최초 록페스티벌이 내 고향 인천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간식 안 먹고 모은 쌈짓돈과 학원비를 횡령(?)해 7만원을 모아 갔습니다. 비가 엄청 많이 왔습니다. 기록적인 폭우였답니다. 결국 이틀로 예정된 공연은 단 하루만 간신히 열렸습니다. 그땐 이제 록페스티벌은 영원히 안녕이라 생각했습니다. 7년 후인 2006년 펜타포트란 이름으로 다시 부활할 때까지는요. 그렇게 매년 여름 거르지 않고 찾았습니다. 벌써 올해가 10년이랍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서른 넷의 직장인 6년차가 돼 있더군요. 여드름 덕지덕지 난 홍안의 고등학생이었던 제가요. 매년 느끼지만 과거보다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아진 듯해요. 그 시절 저와 같은 소년이 커서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일까요? 내년 이맘때 저도 그럴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이상서 대리·일간스포츠 디지털기획운영팀
김보경 차장, 이상서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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