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습니다'서 '했다'로 … 단신 쓰는데 1시간 넘게 고생
중앙일보 중앙사보 2015.08.24
신문·방송 기자 교류 적응기

2년 전 이맘때쯤 2년 넘게 다니던 신문사를 나와 JTBC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방송의 ‘방’자도 몰랐던 시절이다. “한번 해 보고 싶다”란 의욕 하나만으로 달려들었으니, 지금 보면 20대였기에 가능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바라던 대로 됐으니 이후 닥칠 어려움은 모두 감당해내리라 단언했지만 위기의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그때 처음 알았다. 기자가 다 같은 기자는 아니란 사실을. 방송기자와 신문기자는 엄연히 ‘다른’ 직종임을.

 

7월 22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황수연 기자의 첫 면톱 기사.


요즘 2년 전 꼭 그 때를 보는 것 같다. JTBC에서 중앙일보로 옮긴 때문이다. 2년 전과 다른 건 그 사이 난 두 살을 더 먹었고, 그래서인지 변화에 대한 공포가 배 이상 커졌다는 거다. 새 사람 만나고 새 일 하는 게 즐거워 기자가 됐는데 갑자기 모든 변화가 낯설다.


이쯤 되면 신혼 탓을 해볼까도 싶다. 하필 인사와 결혼이 맞물렸다. 신혼여행 이틀째인가 방이 붙었다. 돌아오는 날까지 신랑과의 새 삶보다 신문기자로서의 새 삶을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단꿈에 젖어 있던 그때만 해도 신랑과 회사, 두 상대와 벌이는 겹(?) 허니문이 그저 설렜다. 그런데 아무래도 과했나 보다. 30대에 찾아온 역대급 변화가 조금은 벅차다.


좌충우돌 삶을 살고 있다. ‘했습니다’가 아닌 ‘했다’로 기사를 처음 쓰던 날, 분량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 시간 넘게 붙들어 매고 고치고 또 고치길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짧고 쉬운 자료 기사에 그만큼이나 머리를 싸맸단 사실은 아무도 모를 거다. 산고 끝에 내놓은 문장들이 얼마나 살아 남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듯 많은 문장이 새로 태어났다. 5년 만에 수습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조용필이 떠난 뒤 노래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환경부를 맡게 된 첫 출근 날 나를 처음 본 모 선배가 던진 말이다. 여기서 조용필은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다. 나는 환경부의 조용필 격인 강 선배의 뒤를 이어 무대에 선 가수라는 얘기다. 조용필보다 노래 실력이 뒤처져도 부담은 없지만 그 아성(牙城)을 뛰어 넘으면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자리라는 격려의 말이었다. 그땐 그냥 웃어 넘겼는데 요즘엔 조용필을 따라 관객도 다 떠난 건 아닌지 사실 걱정이 많다. 하지만 이 교류기를 끝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려 한다. 조용필은 못돼도 나만의 팬이 생길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무모한 도전을 다시 해보겠다.

황수연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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