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 대학원 공부까지 시켰어요 … 중앙일보는 내 삶 자체”
중앙사보 2015.08.31
황선유 디자인웍스 본부장 납 활자부터 CTS 시대까지 32년 간 중앙일보 변화 선도
그의 손은 길고 가늘었다. 32년 동안 신문 제작을 위해 쉼 없이 움직인 ‘바쁜 손’이었다. 납 활자로 신문을 조판(彫版)하던 시대(1983년)에 입사한 26세의 청년은 그때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두 딸을 둔 나이(58)가 될 때까지 중앙일보와 함께 했다. 28일 퇴임한 황선유 중앙디자인웍스 제작본부장 이야기다. 32년 동안 신문 제작 방식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의 자리는 언제나 신문 곁이었다. 컴퓨터조판시스템(CTS)이 1991년 처음 도입되기 전까지 약 8년 동안 그는 납 활자로 조판했다. 무거운 납을 옮기고, 판을 다 짜놓은 뒤에 갑자기 기사가 바뀌면 힘든 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신문 조판이 아닌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은 그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신문 조판을 위해 일본 도시바의 CTS를 도입했을 때였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조판 방식을 익혀야 했지만 그는 “먼저 배우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는 밤낮없이 컴퓨터 타자를 익혔다. 새벽엔 일본어 학원을 다녔다. 도시바에서 온 일본 사람들과의 언어 장벽을 넘기 위해서였다. 91년 9월 25일, CTS가 첫 가동되던 그날을 그는 생생히 기억했다. “납이 없는 깨끗해진 제작 환경이 좋았고 컴퓨터로 신문을 만든다는 사실이 당시엔 정말 신기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앞장서 배운 신기술을 가르쳐줘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들도 있었다. 야근이 잦고 주말도 반납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는 “역사적인 기록을 함께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문 조판 부서가 98년 12월 중앙디자인웍스로 분사하면서 그는 신문제작·디자인팀장, 제작본부장을 맡았다. 황 본부장은 “어떤 변화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피하려고 하면 더 힘들어진다”면서 “내 일처럼 능동적으로 앞장서서 할 때 그 일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내가 32년을 일할 수 있게 한 버팀목이었다”고 말했다.
그와 20년 넘게 함께 일한 동료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손이 정말 빨라요. 편집자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첫손가락에 꼽는 분이셨죠.”(서회란 중앙일보 편집디자인부문 차장), “업무에 있어선 깐깐하지만 인간적으론 후배들에게 참 다정하고 잘해주는 선배였어요.”(노시옥 중앙디자인웍스 신문제작팀장), “칭찬을 많이 해주고 언제나 팀원들을 믿어주는 든든한 관리자였어요.”(심희진 중앙디자인웍스 디자인팀 과장)
퇴임하는 소회(所懷)를 묻자 황 본부장은 “중앙일보는 나의 삶 자체였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덕분에 두 딸을 대학원 공부까지 시키고 시집도 보냈어요. 큰절을 하고 나가고 싶을 만큼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임선영 기자
임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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