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일본에도 같은 말이 있다.” 이렇게 시작했던 글(중앙SUNDAY, 2018년 3 월 11일자)이 특파원이란 인연으로 현실이 될 줄 상상도 못 했을 터다. 일본 언론사를 떠나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으로 최근 합류한 오누키 도모코 기자 얘기다. 한국 언론사 소속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는 일본인 기자. 이 ‘전례 없는 도전’을 선택하면서 오누키 특파원은 요즘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총리 관저와 외무성 출입을 오래 해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수준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외국 기자증을 받아야 출입이 자유로운데, 발급에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려서다. 둘째는 점심시간. 일본 언론은 석간과 조간을 둘 다 발행해 기사 마감 때문에 낮에 점심을 챙겨 먹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도쿄총국 출근 일주일. 오누키 특파원은 “거리에선 일본어가 들리는데, 한국어로 말하고, 또 한국어로 일하고 있어서 여기가 일본이 맞나 헷갈리기도 한다”며 웃었다.

사실 익숙한 것들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도 “재미있겠다”는 이유로. 중앙일보 도쿄특파원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이 그랬다. “달라진 시대, 다른 시선이 되는 일이라면 재미있겠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푹 빠져들었던 성향도 이 도전에 한 몫 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외가를 찾아 3주씩 머물렀다. 외조부는 여름마다 하는 고교 야구 대회인 고시엔(甲子園)을 빠짐없이 봤다. 그 덕이었을까, 자연스레 야구에 빠졌다. 고교 진학 후엔 야구부 매니저가 됐다. 시야가 달라진 건 고등학교 2학년 7월의 일이다. 한 신문 기자가 야구부 취재를 나왔다. 눈이 번쩍 뜨였다. “기자, 재미있겠다.” 좋아하는 야구를 어른이 돼서도 실컷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 길로 생전 안 하던 공부에 돌입했다. 재수 끝에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언론사 입사까지 한달음에 달렸다.
목표가 생기면 좌고우면 없이 직진하던 그에게 새 ‘목표’를 준 건 선거였다. 첫 부임지인 군마현은 나카소네 야스히로(71대 총리)부터 오부치 게이조(84대 총리), 후쿠다 야스오(91대 총리) 등 총리를 배출한 ‘자민당 왕국’. 그런데 오랜 집권여당의 후보가 낙선 하는 일이 벌어졌다. “재미있구나, 정치부에 가볼까?” 그렇게 2005년 도쿄로 올라온 야구 소녀는 정치부 기자로 변신했다.
정신없는 정치부 생활을 하던 2011년 7월, 정치부장이 그를 불렀다. “서울에 가볼래?” 난데없는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어라곤 아는 것이 전무한데, 어째야 하나. 서점으로 달려가 한국어 교재를 샀다. ‘안녕하세요’부터 시작했다. 서울지국에 부임한 2013년. 한국어의 벽은 높았다. 공포증이 일 정도였다. 절치부심, ‘독학으로 공부해서 혼자 한국어 취재를 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2년 뒤인 2015년 중앙 SUNDAY에 한글로 기고를 하기 시작했다.
24년의 일본 기자 생활을 접고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새 출발한 소감을 묻자 솔직담백한 답이 돌아온다. “설렘과 두려움이 섞여 있다”는 거다. “중앙일보는 한국 언론 중에서 가장 열려 있는 곳이라, 제가 합류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언론사 중에 처음 도전하는 것이고요. 외국인에게 기사를 취재하고 쓸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한 설렘이 있어요.” 두려움은 뭘까. 예상 밖 답이 튀어나왔다. “지난 24년간 만나온 취재원들이 어떤 반응일지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걱정과 다르게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어요(웃음).” 오누키 특파원은 “제가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하는 것 자체가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한·일 관계는 물론 제가 중앙일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앞으로 기사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