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간 만난 50명, ‘국적 없는 아이’ 시리즈 대한민국 울렸다
중앙사보 2015.11.02
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아이들의 인권 소홀에 경종
중앙일보 사회부문 최종권·임명수·김호·조혜경·유명한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국적 없는 아이 2만 명’(9월 10·11일자) 시리즈 보도로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 수상했다. 유명한 기자가 취재 뒷얘기를 전한다. 
“국적 없이 숨어 사는 아이 2만 명.” 3월 대전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기획을 제안한 최종권(중앙일보 대전총국 기자) 선배의 설명이 이어졌다.
1월 최 선배가 충북의 한 자치단체장과 얘기를 나누던 중 외국인 근로자들의 자녀 문제가 나왔다. 단체장은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학교도 못 가는 아이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최 선배는 곧장 충북 외국인 노동자 인권지원센터를 찾았다. 그곳 담당자의 도움으로 우즈베키스탄 출신 부부를 만난 선배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불법체류 상태의 부부 사이에는 7살 자혼기르와 6살 잠시드 형제가 있었다. 형제는 어린이집에 갈 수 없어 매일 곰팡이가 핀 10평(33㎡) 남짓한 방에서 엄마와 지냈다. 몇 년째 병원도 가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한국과 본국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무국적 아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성년이 됐을 땐 사회가 만든 문제아가 될 수 있다’는 최 선배의 생각이 특별취재팀을 꾸리는 단초가 됐다. 대전 회의가 끝난 뒤 특별취재팀이 만들어졌다. 최 선배를 팀장으로 임명수(경인총국)·김호(광주총국) 선배, 조혜경 기자와 팀을 이뤘다. 또 기사의 영어 번역을 맡은 코리아중앙데일리 이성은 기자와 동영상을 담당한 디지털영상팀이 합류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특별취재팀에 참여한 나는 기대만큼이나 걱정이 앞섰다. ‘선배들만 잘 따라가자’며 시작한 취재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사례를 찾는 일이 어려웠다. 불법체류자 신분의 부모에게 낯선 사람, 그것도 기자라는 신분의 사람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사는 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차례 방문해야 했다. 어렵게 약속을 잡았지만 취재를 하기도 전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적발돼 추방당한 사람도 있었다. 취재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알게 됐고 취재에 대한 욕심도 커졌다. 팀원 모두가 악바리 근성으로 무장해 전국을 누볐다. 우리는 5개월 동안 미등록 이주아동(무국적, 불법체류, 난민 신청 보류 등)과 그들의 부모 50여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기사 작성에 대한 고민도 만만치 않았다. 불법체류라는 범법의 범주에서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이의 인권보호’ 문제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초점을 철저히 아이들에게 맞추기로 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한국 사회에서 외톨이가 된 아이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이에 대한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기로 했다. 신문·디지털 기사 보도 후 반응은 뜨거웠다. ‘죄 없는 아이들이지만 불법은 불법이다. 부모와 함께 추방해야 한다’는 우려 섞인 의견도 있었지만 이들을 보듬어야 한다는 공감을 이끌었다. 취재팀은 독자들에게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내용의 e메일 수십 통을 받기도 했다.
기사는 마무리됐지만 취재 초기 만난 울산 캄보디아 공동체 대표의 말은 잊히지 않는다. “우리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 아이들의 상황이 바뀔 수 있느냐”는 그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던 것이 못내 아쉽다. 언젠가는 그에게 “도와준 덕분에 이런 세상이 왔네요”라며 생색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물심양면으로 취재팀을 지원해주신 모든 분께 취재팀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특히 후배들이 취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권혁주 데스크와 선배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유명한 기자·중앙일보 부산총국
유명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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