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트롬본 … 내 목에는 수십 개의 악기가 있다
중앙일보 중앙사보 2015.02.09
사우의 별별 취미 김봉문 기자의 '아카펠라'

무대에 선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주인공이 되는 것은 멋지지만 집중되는 시선을 견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 때 잠시 몸 담았던 연극 이후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2012년 2월 아카펠라 공연을 위해서였다. 2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노래를 하곤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그때 느꼈던 희열과 쾌감은 아직도 선명하다. 이날은 아카펠라 동호회 ‘야크’의 12번째 정기공연 날이었다.

 

김봉문 기자(오른쪽)가 서울 홍익대 인근 공연장에서 아카펠라 화음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카펠라(Acappella)란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만드는 음악을 말한다. 여자 둘(소프라노·알토), 남자 셋(테너·바리톤·베이스)의 5인조를 구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소프라노·테너가 고음부의 멜로디를 부르면 베이스가 중후한 저음으로 받쳐주고 알토와 바리톤이 그 사이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완성시킨다. 목소리로 악기 소리를 모방하기도 하고 타악기 소리를 전담하는 파트도 있다. 
 

젊었을 때 성악을 하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학창 시절엔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불러 친구들 귀를 괴롭히는, 한 반에 한 명씩 꼭 있는 그런 녀석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스웨덴 출신의 아카펠라 중창단 ‘리얼그룹(The Real Group)’의 ‘Walking Down the Street’가 나를 사로잡았다. 악기 없이 목소리만을 모아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본격적으로 동호회를 나가기 시작한 건 군대 전역 후인 2011년 3월이다. 당시 국내엔 이른바 4대 아카펠라 동호회가 있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고른 것이 야크였다. 서울 중구 수표동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매주 한 번씩 모임을 열어 노래도 연습하고 뒤풀이도 즐기는 동호회다. 나를 가장 먼저 사로잡은 건 기존 회원들의 시범이었다. 10년 넘게 활동한 멤버들이 맞추는 호흡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어안이 벙벙해서 따라간 뒤풀이는 또 다른 놀라움이었다. 늘 간다는 보쌈집 2층에 자리 잡고 앉아서 20~30명이 합창처럼 부르는 아카펠라 메들리는 또 다른 묘미였다.
 

그렇게 아카펠라에 빠졌다. 거의 매주 모임에 나가 노래를 연습했고 머지않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팀도 만들어 정기공연 준비에 매진했다. 매년 열리는 정기공연 외에도 수시로 여는 거리공연에도 여러 번 참가했다. 트롬본·하모니카 등 악기 소리를 입으로 내는 게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집에서도 혼자 연습하면서 점차 실제 악기 소리에 가깝게 낼 수 있게 됐다. 
 

현재 고정적으로 활동하는 5인조 팀에서 테너를 맡고 있고 처음 동호회에 와서 입을 떡 벌리게 만들었던 노래들을 나도 부를 수 있게 됐다. 가장 자신 있는 노래는 일본 아카펠라 그룹 ‘트라이톤(Try-tone)’의 ‘Love Letters’와 리얼그룹의 ‘A Life For Me’다.   
 

지난해엔 동호회 ‘시삽’도 됐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이 시삽이란 말은 그 자체로 동호회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올해로 열다섯 돌을 맞는 야크는, PC통신 시절 운영자를 일컫는 시삽이란 단어를 회장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약 1년 동안 시삽으로 일하며 연습모임을 이끌었고 이제 곧 후임자에게 동호회 운영의 전권을 위임할 예정이다. 노래를 할 수 있어 좋았고 자칫 타향살이에 외로울 수 있었던 내 20대의 절반을 함께해준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다. 곧 시삽은 그만두겠지만 평회원으로 남아 앞으로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일상의 스트레스를 아름다운 하모니로 날려버릴 생각이다.

김봉문 기자 코리아중앙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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