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서 뻗치기, 위원회 속기록 뒤지기… 팀워크의 승리
중앙사보 2015.12.28
중앙일보 메르스 특별취재팀 사장상 수상 후기
잇단 특종, 두 달간 흐름 주도 편집·그래픽·영상도 한 몫
“선배, 양성이랍니다.”
지난 5월 28일 밤 휴대전화 너머로 정종훈 기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중국으로 출장을 떠난 10번 확진자(44·세 번째 확진자 아들)가 메르스 양성이란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다. 다음날 본지는 1면에 ‘중국 간 의심환자 메르스 감염 확인’이란 특종 기사를 보도했다. 정 기자는 그날 온종일 충북 청주에 있는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에서 ‘뻗치기’를 했다. 점심·저녁 식사도 대충 때운 채 끈질기게 질본 담당자들에게 따라붙었다. 덕분에 그는 어깨너머로 특종을 잡아챘다. 공무원처럼 생긴 정 기자의 외모도 한몫했다. 질본 직원 누구도 그가 기자일 거라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간식도 나눠 먹었다고 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는 사태 초기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놓치지 않았다. 남들이 흘려보낸 속기록을 분석해 ‘메르스 골든타임 36시간 놓쳤다(6월 1일자 1면)’ 기사로 보건당국이 초동 대응에 실패한 과정을 낱낱이 파헤쳤다. 질본이 메르스 최초 환자를 처음 진단해 낸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전문의의 신고에도 ‘(환자가 다녀온)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다’며 무시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6월 들어 사회1부를 중심으로 사회2부와 내셔널 기자들이 뭉쳐 ‘메르스 특별취재팀’이 구성됐다. 김남중 사회에디터와 강홍준 사회1부 데스크, 신 전문기자가 구심점이 됐다. 취재팀은 마치 한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보건의료 시스템을 지적하는 기획 기사, 병원과 의료진이 처한 상황을 직접 체험한 르포 기사, 수많은 단독 기사 등을 합작해냈다. 메르스 발생 40일째를 즈음한 ‘메르스 징비록’ 기획은 보건복지부와 질본, 병원들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제안하며 사회 각계에서 공감을 이끌어냈다.
‘내 환자 지키기 위해 저승사자에게 맨머리 들이밀겠다’고 한 동탄성심병원 김현아 간호사의 편지도 본지의 특종이었다. 온라인에서 며칠 동안 회자되며 수천 개의 댓글이 붙었고, 타지 칼럼에 인용된 것은 물론 방송 매체에서 김 간호사 인터뷰를 쏟아냈다. 바로 뒤이은 을지대병원의 임종 편지도 온라인에서 25만 클릭을 기록했다. 연이은 기사는 메르스 의료진과 그 가족을 따돌리던 사회적 분위기를 확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의료진과 환자가 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고, 환자 가족들이 임종을 지킬 수 있게 되는 등 제도적 변화도 나타났다.
수습 기간 막바지에 있던 50기 기자들도 특별취재팀에 합류해 활약했다. 김나한 기자는 강남세브란스병원을 탈출한 논란의 장본인 141번 환자를 단독 인터뷰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르포 취재를 한 김민관 기자는 간호사들의 인기를 독차지해 선배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삼성병원 취재에 나섰던 신진 기자가 고열과 배탈 등 메르스 의심 증세를 보인 것이다. 신 기자는 동네 보건소에서 메르스 검사를 받고 사흘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다행히 음성 반응이 나왔지만 당시 편집국에선 “신 기자와 최근 밥을 같이 먹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자가 격리를 자청한 기자가 여럿 나왔다.
두 달이 넘는 기간 내내 본지가 뉴스의 흐름을 주도해갈 수 있었던 건 취재팀만의 공은 아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한 면, 한 면 눈길을 사로잡는 차별화된 지면을 만들어준 편집·그래픽 담당 선배들의 노고가 컸다. 위험할지 모르는 현장 깊숙한 곳까지 렌즈를 들이댔던 영상부 선배들께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현장의 기자들을 믿어주고 지면을 할애해주신 최훈 편집국장과 회사에 사장상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


이에스더 기자·중앙일보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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