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폭죽 쏘는데 북한 미사일 쏘니… 한국은 설날도 못 쉬네
중앙사보 2016.02.15

중국서 온 신년 편지 -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조희팔 좇다 다른 수배자 취재
땅 만큼 취재영역도 넓어
높은 취재장벽, 발품으로 뚫어

 

“중국은 춘절에 폭죽을 쏘고, 북한은 설날에 미사일을 쏘는데 한국은 설날에 쉬지도 못하는구나.”


한국어로 옮기니 글맛이 살지 않는군요. 원문은 이렇습니다. 中?春?放鞭?,朝?春?放??。??春?放也不敢放假。폭죽이나 미사일을 ‘쏘다’는 동사도 ‘놓을 방(放)’이고 방학이나 휴가로 ‘쉬다’ 역시 ‘방(放)’이기 때문에 이런 절묘한 표현이 가능한 겁니다. 지인에게 “그놈의 미사일 때문에 설연휴 모조리 반납하고 출근했다”고 하자 휴대전화로 보내온 ‘염장 메시지’입니다. 

이번 설뿐 아니라 중국에선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나라 힘이 커져 시진핑 주석이 한마디만 해도 기사가 되는 데다 한국과 워낙 얽히고 설킨 게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온갖 업무에 휘말려 들어가는 게 베이징 특파원입니다. 지난 연말 “조희팔로 추정되는 한국인이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는 말을 듣고 타사가 눈치를 못 채도록 조심조심 취재에 나섰습니다. 알고 보니 한국의 수배자가 산둥성에서 호화 도피 생활을 즐기다 하필이면 조희팔과 얼굴이 비슷해 오인신고가 들어간 것이더군요. 중국 공안이야 피라미라도 건졌지만 저는 꿩 대신 닭은커녕 닭발 한 쪽 못 건진 격이 됐습니다. 지난달엔 연예계 가십인 줄 알았던 게 ‘양안 관계’를 뒤흔드는 정치 사건으로 커져 베이징 특파원의 ‘나와바리’(영역)로 들어왔습니다. 법조기자 시절의 푸념이 절로 나오더군요. “하수종말처리장이 따로 없군.”


취재영역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취재영역이 넓다 보니 사흘이 멀다 하고 출장 가방을 싸게 됩니다. 1월 대만 선거 취재를 다녀온 뒤 최근 1년간 사용한 탑승권과 고속철 승차권을 꺼내 보니 50장에 가까웠습니다. 정말 힘든 건 취재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벽입니다. 모든 정보, 심지어 SNS까지 통제되는 중국에선 한가하게 신문만 읽고 있다가는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엔 기자실도, 보도자료도 없습니다. 관공서엔 들여보내 주지도 않거니와 취재원과의 접근은 더더욱 통제됩니다.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방에 사는 A씨의 한국 여행 수속을 도와줬더니 베이징 온 길에 저를 술자리로 부르더군요. 현역 대교(대령) B씨를 소개해 주면서 “두 사람 모두 내 친구이니 당신끼리도 이제 친구다. 나 없이도 자주 만나라”며 바이주(白酒)를 마구 권하는 게 아닙니까. ‘옳거니, 이제부터 군부에 빨대(취재원)가 생기는구나.’ 오는 잔 마구 받아 마셨습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난 뒤 B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지난번 신세 졌는데 갚을 기회를 달라.” “미안하지만 내일부터 장기 출장인데 다녀오면 전화하겠다.” 다음 날 A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B가 규정상 외국 기자를 만날 수 없는 신분인데 엉겁결에 거짓 출장 핑계를 댔다며 대신 사과를 해달라고 한다.” 그러고선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예전엔 괜찮았는데 시진핑 체제 이후 엄격해졌다. 그래도 제3자와 함께라면 괜찮다고 하니 다음에 베이징 가면 연락하겠다.” 다시 삼자 동석해 바이주를 비울 기회가 생기면 A가 화장실 가는 틈을 타 B에게 취재를 할 작정입니다.

기자 경력 20년이 넘지만 베이징에서의 취재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늘 써먹었고 일본 특파원 시절에도 통하던 취재 기법이 여기에선 제도적으로 원천봉쇄돼 있습니다. 대신 그 틈을 뚫고 들어가 단 한 줄의 팩트라도 건져 기사로 쓸 때의 보람은 국내에서와 비할 바 아닙니다. 부지런히 발품, 술품 팔다 보면 바늘 같은 틈이 어느새 넓어진다는 사실을 지난 2년간 배웠습니다. 다음에는 중국 군부의 최신 동향에 관한 특종 보도 뒷얘기를 전해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예영준 특파원
첨부파일
이어서 읽기 좋은 콘텐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