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주인처럼…낡은 관습, 평범한 상식 거부하라
중앙사보 2016.02.22

홍석현 회장 포스텍 연설
한국인 최초 명예박사 받아
교수 40명 서명으로 추천

 

“오래전, 여러분처럼 졸업식에 섰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조금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느 분이 연설을 했는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제가 기억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19일 포스텍(POSTECH·옛 포항공대)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의 기념 연설은 이처럼 위트 섞인 ‘고백’으로 시작됐다. 인생의 새 무대에 나선다는 긴장감에 굳어있던 POSTECH 졸업생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홍 회장은 이어 “여러분도 제 말을 기억할 확률은 낮지만, 절실한 인생 경험을 들려드린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날 열린 포스텍의 2015학년도 학위수여식에서 김도연 총장은 홍 회장에게 명예공학박사(전자전기공학)를 수여했다. 올해 개교 30년을 맞는 포스텍이 지금까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인물은 홍 회장을 포함해 4명에 그친다. 대한민국 국적자는 홍 회장뿐이다. 학위수여식에서 김 총장은 “홍 회장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창업자·학자·언론인·행정가·기업인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 발전에 공헌해왔다”며 “진취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온 모습이 우리 학생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명예박사학위 수여는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전원의 추천, 대학원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쳤다. 학교 관계자는 “이와 별도로 40여 명의 교수가 직접 서명에 나서 명예박사로 추천한다는 뜻을 총장에게 전했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졸업생과 학부모, 교직원 3000여 명이 참석한 학위수여식에서 홍 회장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담담한 어조로 소개했다. 공대를 택했던 이유에 대해 정치 상황에 휘말려 고통받았던 가족사, 한국 전자산업의 선구자였던 고(故) 김완희 박사로부터 받은 감동을 꼽았다. 홍 회장은 “그 시절 전자공학과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때 인재가 한국의 반도체 신화를 쓰는 주역이 됐다”며 후배 공학도에게 국가 번영에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홍 회장은 1999년 정치 상황에 휘말려 옥고를 치를 때, 2005년 주미 대사를 7개월 만에 그만두고 칩거할 당시의 심경도 털어놨다. “할머니는 내가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기 원하셨다. 할머니의 염원과 다른 길을 찾았던 ‘운명의 함정’ 같은 일”이라고 회고했다. 홍 회장은 “추사 김정희 선생도 제주도 9년 유배를 겪지 않았다면 추사체가 나올 수 없었다. 나 역시 시련이 없었다면 날카로운 성정을 부드럽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배 공학도에게 홍 회장은 “천명(天命)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홍 회장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삶을 찾아 일생을 매진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그런 사람은 무엇이 됐든 성공을 이룰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당부하면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중국 당나라의 선승 임제 선사의 설법)’이라는 좌우명을 소개했다.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나 주인의식을 갖고 대처해 나가면 어떤 어려움도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홍 회장은 포스코(옛 포항제철)의 건립 과정을 예로 들며 “수처작주의 정신은 낡은 관습과 평범한 상식, 대중 영합적인 방식을 거부한다. 여러분도 인생의 고비마다 고독한 결단, 역발상의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조언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는 제목으로 20분간 진행된 연설은 “나누는 삶을 살라”는 당부로 끝났다. 연설 뒤 홍 회장은 김도연 총장, 권오준 포스텍 이사장과 함께 이날 졸업생과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


포항=천인성 기자·중앙일보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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