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어렵다” “그럼 함께 마시자” 취중진담 이끈 ‘신의 한 수’
중앙사보 2016.03.21

이세돌 단독 인터뷰 취재기


폐막식 홀연 떠난 이 9단에
끈질긴 문자 공세로 만남 성사


알파고 취재 경쟁서 앞선 건
선후배들의 폭발적 지원 덕

 

‘인간과 인공지능(AI)의 대결’로 불린  이세돌 대 알파고(AlphaGo·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의 대국이 3월 9~15일 열렸다.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이벤트였던 만큼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정아람 중앙일보 바둑담당 기자는 이세돌 9단 ‘취중 인터뷰’ 특종을 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 뒷얘기를 들어본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최종국이 열린 15일. 이날  중요한 건 오로지 이세돌 9단을 따로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오전 제주도로 떠나는 이 9단을 제대로 만날 기회는 이 때뿐이었다. 양성희 문화데스크는 내가 현장 취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일 대국 관련 기사는 모두 선후배가 작성했다.

드디어 최종국이 끝나고 폐회식에서 이세돌 9단은 “이번은 내가 주인공이 아닌 거 같다. 감사하고 죄송했다”며 자리를 떴다. 황급히 멘트를 정리해 단말에 올리고 이 9단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호텔을 빠져나간 뒤였다. 이 9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순간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5국 심판을 맡았던 이다혜 4단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이 4단과 기자는 술을 마시며 주로 남자 이야기를 하는 사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정색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 9단의 부인 김현진씨와 가까운 이다혜 4단은 먼저 김씨에게 인터뷰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했다. 답을 기다리며 이세돌 9단에게 수 차례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이 9단에게서 전화가 왔다. 번개처럼 받자 이 9단이 “미안하다. 술자리라 전화를 못 받았다”고 했다. 잠시 인터뷰가 가능하냐고 묻자 “술 취해서 어려울 거 같다”고 했다. 이에 기자가 “나도 같이 마시면 되지 않느냐, 아니면 나 혼자 술 마시면서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 9단이 웃으며 “그럼 여기로 와라. 같이 마시자”고 했다.


부리나케 달려간 곳은 호텔 뒤편 일식집. 이세돌 9단과 형 이상훈 9단, 이상훈 9단의 친구가 자리해 있었다. 분위기는 매우 침울했다. 이상훈 9단은 “너니까 한 판이라도 이긴 것”이라며 동생을 위로했다. 이 9단은 형의 말을 부정하며 “버그 때문에 한 판 이긴 거 아니냐. 쪽 팔린다”를 연발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5국을 복기하며 계속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다. 그 와중에 이 9단에게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9단은 수신거부를 누르며 “기보를 볼 수가 없다”며 짜증을 냈다.


침울했던 이세돌 9단도 술이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졌다. 자학하는 개그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빨리 기사를 마감해야 하는 초조함은 커져갔다. 돌판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정말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일식집 주인이 영업이 끝났다고 했다. 이세돌 9단은 2차로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이만 가보겠다고 한 뒤 문화부 신준봉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자리에서 나온 이 9단의 워딩을 생각나는 대로 읊었다.

한 차례 쓰나미 같았다. 정말 많은 선후배가 고생했다. 재야의 바둑 고수인 최민우 선배는 당일 기사를 처리하고 디지털 중계를 하면서 다음날 기사도 기획하는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보여줬다. 양성희 문화데스크와 신준봉·이후남 선배도 대국 내내 야근을 하며 마지막까지 기사가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애를 썼다. 디지털 제작실의 정선언 선배는 디지털 중계를 총괄, 기획하고 세세한 온라인 기사까지 챙기며 고생했다. 바둑 고수인 손국희 기자도 사회부문에서 바둑 관련 반향을 기사화하고 디지털 중계에 참여했다. 경제부문 손해용 선배는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를 단독 인터뷰하는 등 AI 관련 이슈를 이끌었다. 선후배들의 대단한 집중력과 취재력은 알파고 쓰나미를 가뿐히 이겨냈다.

정아람 기자·중앙일보

정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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