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중앙일보 독자 위해 뛴 20년, 최고령 보급소장의 은퇴
중앙사보 2016.03.21

OC본부 김영호 소장


지난달 80세로 자리 물러나
“20년간 못간 고국 찾겠다”

 

미국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LA)엔 약 50만 명의 한인이 산다. LA 바로 남쪽엔 오렌지카운티(OC)가 있는데 이곳에도 약 10만 명의 한인이 있다. 방문객·주재원·유학생 등 단기 체류자까지 합치면 그 수가 거의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난다. 이 120만 명이 LA중앙일보 독자다.

김영호(80) 오렌지카운티 보급소장은 20년 동안 중앙일보의 대(對)고객 전선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다 지난 2월 말 은퇴했다. 김 소장은 군인 출신이다. 1950~53년 6·25전쟁 말미 소위로 임관해 월남전에도 참전하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고 무공도 많이 세웠다고 한다. 그러다 80년 신군부 등장 이후 대령으로 예편한 직후 미국에 이민 왔다. 정치 군인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떠나온 터여서 10여 년은 두문불출 지냈다고 했다. LA중앙일보에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50대 후반이었다. 

처음엔 신문을 직접 배달하는 일부터 했다. 얼마 뒤 OC보급소장을 맡았다. 군 생활을 통해 몸에 밴 근면·성실함은 보급소장을 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추우나 더우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달원들을 독려하고 독자들을 만났다. 함께했던 배달원이 모두 128명이라는 것까지 기억할 정도다. 

20년간 보급소 일을 하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혹여 배달원들에게 사고가 날까 늘 가슴을 졸였다. 교통사고나 배달원 강도 오인 사고가 종종 발생하면 며칠씩 마음고생을 했다. 몸소 트럭에서 신문을 실어 나르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다. 그래도 꼬박 6개월을 목발에 기대며 일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배달원이 체포됐다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누가 자꾸 신문을 집어간다며 신문을 쓰레기통 속에 넣어 놓으라는 독자의 ‘특이한’ 부탁을 받고 그 집 쓰레기통을 찾느라 어슬렁거리다 도둑으로 몰린 것이다. 미국 경찰, 정말이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김 소장과 나는 그때 알았다. 그 배달원을 구명하기 위해 변호사를 대가며 두 달 넘게 얼마나 동분서주(東奔西走), 노심초사(勞心焦思) 했던지. 

이제 이런 일들은 모두 추억이 됐다. 은퇴하면서 김 소장이 가장 먼저 계획한 일은 고국 방문이다. 20년간 한 번도 못 가본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리운 산천·친구·친지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는 김 소장. 꼭 문병을 가야 할 곳도 있단다. 군 생활 내내 각별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끝까지 예편을 말렸던 분이 투병 중인데 꼭 찾아봬야 한다”고 했다. 

정 들었던 OC본부 직원들이 지난 3월 1일 김 소장을 떠나 보내면서 조촐한 송별연을 열었다. LA본사에서 마련한 감사패와 기념품도 전했다. 20년 LA중앙일보 성장의 숨은 주역이었던 그의 고별사다.

“행복했습니다. 중앙일보 식구여서 행복했고 중앙일보로 인해 이 나이까지 보람 있게 일할 수 있어서 또 행복했습니다. 중앙일보, 사랑합니다.”

이종호 본부장·LA중앙일보

이종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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