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불태운 부상 투혼 … 아쉬운 승부차기 패, 그래도 잘싸웠다
중앙사보 2016.05.19

중앙, 기협 축구대회 준우승
결승서 승부차기 3-4 석패
내년 우승 향해 다시 뛸 것


알려 드립니다. 중앙일보 축구팀은 ‘2016 기자협회 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많은 선배의 축하와 격려처럼 꽤나 훌륭한 성적이라는 걸. 그런데도 우승이라는 두 글자 앞에 붙어 있는 ‘준’이라는 한 글자가 왜 이리도 야속한 걸까요. 2연패(連覇)를 이루지 못한 게 왜 이리도 아쉬울까요. 아직도 동아일보와의 결승전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경기를 앞둔 라커룸 안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습니다. 만화 ‘슬램덩크’가 떠오르더군요. 경기 도중 심각한 허리 부상을 당한 강백호. 출전을 만류하는 감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라커룸에 모인 선수단 모두가 ‘강백호들’이었습니다. 당장 드러누워도 이상할 것 없는 부상 병동이지만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마지막 경기를 준비합니다.
 왼손 중지가 골절된 ‘야신’ 정원엽 선배는 특수 장갑을 낀 채 골문을 지킵니다. 16강전에서 허벅지 부상이 악화돼 절뚝거리며 교체됐던 ‘왼쪽 날개’ 노진호 선배, 같은 경기에서 상대방 수비수와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며 뇌진탕 증세까지 보인 ‘적토마’ 서복현 선배는 “언제든 출전 가능하다”며 몸을 풉니다. 양발의 엄지발톱이 모두 빠진 상태로 전 경기를 소화하던 ‘진공 청소기’ 최종권 선배에게서는 급기야 코피가 쏟아집니다.
“자 마지막 30분, 끝까지 불태우자, 중앙! 중앙! 파이팅!”
 신인섭 선배는 늘 그렇듯 듬직한 모습입니다. 기합 한 번 크게 지르고 라커룸 문을 열고 나옵니다. 응원단의 환호성과 북소리, 경쾌한 응원가가 그라운드를 가득 채웠지만 귓가는 멍하기만 합니다. 결승전. 앞선 경기와는 부담감의 크기가 사뭇 다르더군요. 긴장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 경기장 잔디 위를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집니다. 마치 진흙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상기된 제 얼굴을 본 신준봉 선배가 온화한 표정으로 한마디 건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하던 대로만 하자.”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신준봉 선배, 함승민 선배와 함께 ‘스리 백’을 짜고 이어온 무실점 행진. 몸을 던져서라도 끝까지 이어가리라 다짐합니다.
“삑-삐익.”
 심판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됩니다. 양 팀 모두 체력이 바닥난 상태.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22명의 선수가 그라운드를 누빕니다. ‘에이스’ 박진호 선배가 발목을 걷어차이자 저희도 거친 몸싸움으로 응수합니다. 경기가 점차 뜨거워지고 여기저기서 ‘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전쟁이더군요. 공이 제 쪽으로 넘어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김없이 공과 함께 상대방 공격수는 달려옵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두 다리. 손과 발을 모두 동원해 상대 선수를 막아보려 합니다. 잔실수를 거듭 반복했지만 그때마다 함승민 선배가 달려와 빈 공간을 채워줍니다. 그렇게 3시간처럼 길었던 전후반 30분 경기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스코어는 ‘0-0’. 결국 경기는 피 말리는 승부차기로 이어집니다.
‘일구일생 일구일사(一球一生 一球一死).’
 이제부턴 공 하나 하나가 승패와 직결됩니다. 박진호 선배, 이정봉 선배, 최종권 선배, 박태희 선배가 차례차례 페널티 박스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 뒷모습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이더군요. 이제부터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뿐. 우리 팀 차례가 돌아오면 ‘들어가라, 들어가라’를, 상대팀 차례가 찾아오면 ‘빗나가라, 빗나가라’를 마음 속으로 수십 번씩 외쳐봅니다. 공이 키커의 발을 떠날 때마다 양 팀의 응원석에선 환호와 탄성이 엇갈립니다. 최종 스코어는 ‘3-4’. 너무나도 아쉬운 패배. 두 무릎에 힘이 탁 풀리고 고개는 푹 숙여집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뛸 수 있는 방법은 몸을 웅크리는 겁니다. 우리는 다음을 위해 잠시 몸을 웅크렸습니다.” 정종문 선배의 뒤풀이 건배사처럼 저희 축구팀은 내년을 기약하며 올해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핸드볼 영화 우생순의 마지막 장면처럼 진한 아쉬움이 남지만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기억도 가득합니다.
 새벽 연습 때마다 경기장에 함께 나와 목이 쉬어라 응원해주신 최훈 편집국장, 선수들의 갖은 뒷바라지를 꼼꼼하게 챙겨준 미모의 매니저 김효은 선배, 감동의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주신 이한길 선배. 그리고 누구보다 고생해준 김준영·서준석·송승환 수습 3인방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이제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김민관 기자·중앙일보

 

김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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