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조각 맞추듯 지인 20여명 밀착…젊은 검사의 억울한 자살 밝혀내
중앙사보 2016.07.14

손국희 기자의 취재 후기
지난 5월 19일 서울 남부지검 검사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남부지검 측에선 “보도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습니다.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서른셋, 젊은 검사가 단지 과중한 업무로 자살을 선택하다니. 사회2부 조강수 부장과 이상언 선배는 죽음에 얽힌 사연이 있는지 취재해보라고 했습니다.
 먼저 검사실 관계자들부터 접촉해봤습니다. “언급할 처지가 아니다” “잘 모른다” 등의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김 검사의 생전 행적의 퍼즐 조각을 맞춰보자는 생각으로 지인들을 수소문했습니다. 대학·사법연수원 동기부터 고등학교 동창까지. 한 명을 취재하면서 다른 지인의 연락처를 얻는 식으로 20여 명의 지인을 접촉했습니다. 마당발 동기 조혜경 기자가 사법연수생 지인을 연결해 준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떠난 이는 말이 없다지만, 남은 이들은 입을 열었습니다. 막막했던 취재였지만 점차 길이 보였습니다.
 지인들의 증언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2월’ 그리고 ‘부장검사’였습니다. 의욕이 남달랐던 김 검사는 올 2월부터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고 합니다. 새로 부임한 부장검사의 폭언이나 부당한 행동들을 언급하며 “자살하고 싶다” “죽고 싶다”는 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는 겁니다. 문제는 증거였습니다. 지인들에게 이를 입증할 김 검사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해줄 것을 설득했습니다. 법조계에서 일하는 지인들이 많아 처음엔 “신상이 드러날 것 같다”며 주저했습니다. 지인들의 근무처를 찾아가 대화를 시도하고 식사를 하며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달라붙다 보니 김 검사가 동기들에게 보낸 20여 건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상 질책 수준을 넘어선 부장검사의 폭언이나 폭행 정황, 자살 충동을 언급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무렵 김 검사의 부모와도 접촉했습니다. 대검찰청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성의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김 검사의 어머니는 대화 내내 오열했습니다.
 반면 아버지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냉정했습니다. “나까지 무너지면 누가 아들의 한을 풀어주겠나”라고 하시더군요. 6월 27일 단독기사가 나간 뒤 김 검사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사건 이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는 아버지가 누구보다 서럽게 펑펑 울었습니다.
 취재 도중 들은 김 검사의 고교 시절 일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같은 반 친구 2명이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수학여행에 가지 못할 처지였다고 합니다. 김 검사는 담임 선생님을 조용히 찾아가 동전과 구겨진 1000원짜리를 전하며 “친구들을 수학여행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용기를 내 증언한 지인들의 마음 한편엔 그의 이런 따뜻한 면모가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세상을 등진 젊은 검사에 대한 취재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보도 이후 대검찰청에선 자체 감찰을 시작했습니다. 뒤늦은 진상조사지만 그 결말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손국희 기자·중앙일보

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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