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교정 위해 시작 … 5년 만에 굽었던 척추 20도 펴져
중앙일보 중앙사보 2015.03.09
사우의 별별취미 전수진 기자의 발레

새하얀 튀튀 차림으로 사뿐히 그랑주테 점프를 뛰고 32회전 푸에테쯤은 눈 감고도 소화하는 우아한 발레리나.


취미가 뭐냐는 물음에 쭈뼛쭈뼛 “발…레요”라고 하면 대부분은 “믿을 수 없다”는 (당연한) 반응을 보이며 이런 모습을 상상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낑낑대며 스트레칭을 하고 헉헉거리며 뛰다 보면 땀 때문에 눈 화장까지 지워지기 일쑤라 우아함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 32회전은커녕 1회전이라도 성공하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수준이다. 하지만 홍대입구에서 우연히 ‘나선영 발레스튜디오’ 간판 옆 ‘자세교정 및 허리통증 개선’ 문구를 보고 홀리듯 들어가 첫 수업을 받은 지 5년째인 지금, 나에게 발레는 일상의 활력소이자 평생 할 운동이 됐다. 언젠가는 연습용 캔버스천 슈즈를 벗고 포앵트슈즈(‘토슈즈’로 통칭)를 신겠다는 꿈도 생겼다.


예술로서의 발레는 감상의 대상이지만 일반인에게 발레는 치열한 유산소 운동이다. 차이콥스키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들으며 건강까지 얻는다니, 이런게 또 어딨나. 여기에다 스트레칭 동작까지 곁들여져 자세교정 효과도 탁월하다. 발레를 시작하기 전 찍었던 X선 사진에선 굽어져 있던 척추가 지난해 건강검진에선 약 20도 펴진 걸 보고 의사가 “뭘 한 거예요?”라고 물었을 정도니까. 다이어트 효과는 몇몇 사우께서 ‘비포 앤드 애프터 발레’ 모습을 기억하실 테니 굳이 설명드릴 필요가 없겠다(라기보다 그때의 모습은 진심 잊고 싶)다.


여성만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은 안타까운 고정관념이다. 내가 다니는 발레 스튜디오엔 30대 후반의 남자 교사도, 올해 75세인 ‘왕언니’ 발레리나도 있다. ‘왕언니’는 심지어 일반인 대상 무용콩쿠르에서 대상까지 받았다. 남자 교사는 발레로 몸짱이 된 후 결혼에 골인, 지금은 부부가 함께 다녀 부러움의 대상이다. 만성 목 디스크를 치료했다는 20대 여성부터 5년째 발레 치료를 받으며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10대 지체장애우까지 각양각색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운동이 발레인 셈이다. 게다가 2013년부터는 정기공연도 마련해 무대에 서 보는 그야말로 이색 경험도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공연을 보러 와준 사우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다.

 

2013년 ‘나선영 일반인 발레단’ 첫 공연 때 무대에 선 모습. 전수진 기자는 “사 진촬영 기술과 포토샵의 발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며 웃었다.


처음 ‘취미로서의 발레’에 눈을 뜬 건 2009년, 당시 61세였던 스티븐 라바인 미국 캘아츠 총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후덕한 백발의 이 신사가 눈을 반짝이며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신나는지 모른다”며 싱글벙글하는 거다. 그 표정을 보며 처음엔 위화감이 든 게 사실이다. 지금은 같이 샹주망 점프라도 뛰고 싶은 심정.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소문·상암 사우들 사이에서도 발레의 저변은 넓고 깊다. 논설위원인 양선희 선배는 칼럼을 통해 발레 매니아임을 밝혔고 구희령 선배는 국립발레단 공연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발레토만(발레 애호가)이다. 이 밖에도 이름을 밝히길 꺼렸지만 여러 여성 사우도 발레로 심신을 단련 중이다. 이제 남성 사우들이 발레의 매력에 빠질 차례가 아닐지. 내가 다니는 곳에선 남성은 트레이닝복이 허용되니 의상에 대한 미묘한 거리감을 느낄 필요가 전무함을 전한다. 언제나 대환영!

 

▶그랑주테(Grand jet)=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발레 동작. 
▶푸에테(fouette)=한 다리는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다리는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회전 동작.  
▶샹주망(Changement)=공중에서 발을 바꾸는 도약.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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