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스 강변서 아이 잃어버려" 대북 소식통의 귀띔
중앙사보 2016.08.25

이영종 통일전문기자의 '태영호 탈북·망명' 특종기

 

“당신 기사를 BBC가 그대로 받았어. 대형 클린 히트를 쳤네.”
 8월 17일 오전 박승희 기획조정1담당의 축하전화가 울렸다. 하루 전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한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 부인·자녀와 함께 망명’ 기사를 영국 BBC가 당일 오후(현지시간)부터 비중 있게 보도한 데 이어 일본과 국내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장이 커지자 사실확인을 거부한 채 함구하던 우리 정부는 17일 오후 긴급 브리핑을 했다. 통일부 대변인을 통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부인·자녀 등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해 보호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18일자 조간에는 타지들이 모두 1면 톱으로 런던에서 발생한 북한 외교관 일가족의 탈북·망명 사실을 실었다.
 국내 언론은 물론 유력 외신을 뒤흔들어버린 파장 큰 특종이었지만 시작은 짤막한 국제전화 한 통이었다. 이달 초 동남아 지역에 체류 중인 믿을 만한 ‘대북 소식통’으로부터 은밀한 귀띔을 받았다.  그는 “윗동네 분들이 템스 강변에서 아이 하나를 잃어버려 난리가 아닙니다”란 말을 남겼다. 아주 긴박하게 보안을 요할 경우에만 쓰기로 하고 번호를 알려준 나의 2G ‘대포폰’을 통해서다. 베테랑 대북 정보요원들 사이에서 ‘윗동네’는 북한을 지칭한다.


 

런던 체류 핵심인사 탈북 직감


 또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인사가 잠적하거나 북한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소식통의 말은 런던에 체류하던 북한 핵심 인사가 탈북했음을 직감하게 했다.
 즉각 취재에 들어갔지만 곧 벽에 부닥쳤다. 대북(對北)정보를 다루는 웬만한 핵심 관계자들도 금시초문이란 반응이었다. 국가정보원 담당 라인과 대북부처 장관급 인사 정도에게만 극히 제한적으로 정보가 제공됐다는 정황 정도만 감지됐다. “상당히 민감한 인물의 탈북·망명 프로세스가 진행 중일 것”이란 생각이 굳어졌다.
 안갯속 같던 사태의 윤곽은 일주일 정도에 걸친 취재를 통해 조금씩 드러났다. 망명한 인사를 두고 복수의 취재원은 “매우 특이한 성(姓)을 가졌으니 찾아보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란 얘기를 해 줬다. “유튜브에 영상도 올라 있는 인물”이란 말은 결정적 도움이 됐다. 며칠 더 지나면서 보완취재가 이뤄졌고, 태영호 공사 일행이 북한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고 안전한 지역에 머물고 있음을 확인했다. 최종 확인을 거쳐 16일자 한 개면에 걸쳐 탈북·망명의 발생 사실을 전하고 그 배경과 북한의 대응 움직임까지 상세하게 다뤘다.
 탈북한 외교관이 태영호 공사라는 점과 그의 부인 오혜선씨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오백룡(전 노동당 군사부장)의 후손이란 점도 취재했지만 정부의 공식 발표가 이뤄진 뒤로 미뤘다. 신변안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구체적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중앙일보의 탈북자 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키려는 취지에서였다.

 

태 공사 안위 확인 후 상세 보도


 태영호 공사의 탈북·망명 파장은 컸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태영호 공사 사례를 지목해 “북한 주요 인사까지 탈북하고 외국으로 망명하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인다”고 언급했다. 국가정보원은 같은 날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태영호 공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부인 오혜선씨는 빨치산 가문이 맞다”며 중앙일보의 보도를 사실로 확인해 줬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 현학봉의 평양 소환 소식 등 속보가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앙일보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조직개편을 마무리하고 구성원 모두가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는 시점에 미력이나마 기여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특종기(特種記)라는 남사스러운 ‘자랑질’을 해 달라는 원고청탁에 무척 망설였지만 “성과를 공유해 붐업 분위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 공감해 글을 쓰게 됐다. 선후배 동료분들의 과분한 축하와 격려에 감사드린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희귀한 북한 영상자료를 발굴해 1면을 빛내준 정영교 연구원, 태영호 공사의 유튜브 인터뷰를 꼼꼼히 요약해 준 전민경 인턴기자와 속보를 챙겨준 서재준 기자를 비롯한 통일문화연구소 식구들께 감사 드린다. 휴가 직전 기사를 쓰는 바람에 공항과 휴양지 야자수 아래서도 노트북을 끼고 지내야 했던 남편을 이해해 준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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