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같은 마을ㆍ평화로운 호수…낯선 소도시로의 특별한 여행
중앙사보 2016.09.01

여름휴가 이야기. 유럽 소도시들
6. 중앙일보플러스 이나경 과장

 

우리 부부는 자동차 여행을 좋아한다.(남편은 중앙일보 헬스콘텐트팀 류장훈 기자다.)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멈추고 싶은 순간 멈출 수 있어서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고 최영미 시인이 말했던가. 구글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는 일 자체가 특별한 여행이다. 특히 유럽은 어디서나 보이는 이국적 풍경이 우리를 한층 들뜨게 만든다. 
 이번 여행은 7월 1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체코의 프라하와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 오스트리아 그문덴(Gmunden)을 거쳐 24일 독일 뮌헨에서 마무리 했다.
 유럽 내에선 독일이 렌터카 비용이 가장 싸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시속 200㎞로 달리는 짜릿함도 느껴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유럽은 요즘 여행하기엔 많이 위험하다. 우리도 마지막 여행지였던 뮌헨에서 큰일을 당할 뻔했다. 7월 22일 발생한 뮌헨 총격 사건 때 우리 부부는 현장 근처에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땅바닥에 엎드려 탕 하고 울리는 총소리를 들으며 몸을 떨었다. 뉴스에서나 나오는 얘기인 줄로만 알았던 테러가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아직은 유럽 전역이 많이 불안하기 때문에 사우들에겐 평화롭고 이색적인 유럽의 소도시를 돌아보기를 추천한다.
 그중 한 곳으로 추천하고 싶은 도시가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블타바 강줄기에 에워싸인 동화 같은 마을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중세 도시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아기자기한 수공예품 상점과 작고 예쁜 카페가 많아 거리를 거닐기만 해도 행복감을 준다. 체스키엔 18세기 이후 지어진 건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관광호텔들도 중세의 느낌이 오롯이 살아 있다. 특히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가는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다. 이른 아침 새소리·물소리가 잠을 깨우고 블타바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보면 신비의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계획할 때 나름의 미션을 정한다. 이번 여행에선 시아버지의 과거 사진 흉내내기를 미션으로 정했다. 시아버지의 독일 유학 시절 사진 한 장에 흐릿한 글씨로 ‘Traunsee sterreich(오스트리아 트라운 호수)’라고 쓰여 있었다. 그 지명을 찾아 향한 곳이 바로 오스트리아 그문덴이라는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 아름다운 전경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마을의 트라운 호수는 이미 그 아름다움으로 명성이 높아 19세기 예술가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호수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일 만큼 물이 맑고, 백조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손길에 거부감이 없다. 관광객이 많은 마을은 아니어서 마을 내 모든 상점과 가게들이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후에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꼭 다시 와보자는 말로 그문덴을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대신 귀한 사진 한 장을 건졌다. 두고두고 즐거운 추억이 되리라.
 20대 땐 늘 휴가 후유증에 시달렸다. 지금은 휴가 때의 충만한 행복이 나의 지난하고도 소중한 일상에서 비롯됐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다. 우리 부부는 훗날 또 낯선 어떤 곳에서 길을 잃기 위해, 절대 길 잃을 일 없는 익숙하고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이나경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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