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망명 특종 이어 연타석 홈런… '중앙이 정보 당국과 짬짜미' 오해도 받아
중앙사보 2016.09.08

이영종 기자의 특종기


8월 하순 식사자리에서 입수
취재원은 언론인의 진짜 갑

 

교육상(相)이 뭔 죄가 있다고 쏘나. 군부나 당처럼 권력을 누리는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친분을 다져온 대북 소식통 K의 말에 귀가 쫑긋 서는 기분을 느꼈다. 말끝을 흐렸지만 한국의 교육부 장관에 해당하는 북한 내각의 교육담당 각료가 처형당했다는 얘기임을 직감했다. 고급 정보를 다뤄온 그는 경험상 신뢰할 만한 취재원이었다. 기자의 몇 번에 걸친 채근에 K는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 대한민국에 아는 사람이 다섯 명 정도란 의미였다. 그만큼 극소수 핵심 당국자만 공유하는 정보란 얘기다. 보안 문제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다시 나랑 안 만날 거냐는 협박성 애원 끝에 겨우 챙긴 건 김정은 앞에서 졸다가 그랬다는 팩트 정도였다.
 북한 교육상 처형 특종 기사 취재는 8월 하순 한 식당에서 시작됐다. 탈북·망명한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 태영호 공사가 우선 화제에 올랐다. 평양 엘리트들의 동요가 심한 것 같다는 기자의 얘기에 K는 처형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발사 도발 행보에 신경이 쏠린 상황에서 처형설은 뜻밖의 뉴스였다. 게다가 내각 간부 쪽으로까지 숙청의 폭을 넓혔다는 건 김정은식 공포정치의 확산을 의미했다.
 추가 취재를 통해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에서 조는 모습이 드러나 불경죄로 보위부의 집중 조사를 받았다는 점이 파악됐다. 또 수령 모독과 반당·반혁명 등의 혐의가 덧씌워졌다는 점도 확인했다. 편집국 정치데스크는 흔쾌히 1면 톱과 해설박스 지면을 내주었다. 기사의 핵심 팩트는 보도 하루 만에 통일부의 브리핑을 통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태영호 공사 탈북·망명 단독 보도에 이어 교육상 처형까지 중앙일보가 특종을 터뜨리자 타 매체에서 볼멘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중앙이 정보 당국과 짬짜미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단다. 하지만 불만은 내곡동(이곳에 본부를 둔 국가정보원을 지칭) 쪽에서 더 크게 들린다. 중앙 보도 때문에 공연히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는 얘기다. 한 대북 전문가는 태영호 망명과 교육상 처형 뉴스 모두 정부 당국이 훌륭하게 써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을 텐데 중앙 때문에 스텝이 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 보도 이후 관계 당국이 보인 미숙한 대응은 개선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교육상 처형 보도 당일 공식 브리핑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며 사실이 아닌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통일부 대변인을 통해 알아보니 처형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태영호 공사 망명 보도 때도 직후엔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다 하루 만에 탈북·망명해 한국에 도착했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타사 기자들은 처음엔 중앙이 오보를 한 것 같다고 내부 보고했다가 하루 뒤 기사를 받아야 하는 낭패를 겪었다.
이번 보도 과정을 통해 기자에게 취재원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접근이 어려운 대북 정보를 추적해야 하는 통일·북한 분야 담당 언론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첩보를 쥐고 있는 소수의 핵심 당국자나 소식통이 진짜 갑(甲)인 셈이다.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논란과 우려가 이어지지만 이 분야 취재현장은 무풍지대인 이유다. 이번 추석엔 K의 집에 튼실한 갈비세트를 선물로 보낼 참이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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