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연애 끝에 장교와 기자로… 평생 잘 살게요
중앙사보 2016.10.06

웨딩 스토리. 중앙일보 산업부 허정연 기자

 

“누나, 저 여친(여자친구) 있거든요?”
2002년 여름, 한 학년 아래 남학생이 제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유네스코에서 주최한 청소년 캠프에 참가 중이었습니다. 여고에 다니며 좀처럼 남학생을 만날 기회가 없던 게 문제였을까요? 좀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의 과한 선 긋기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서로 사는 지역이 달라 더 이상 볼 기회가 없던 그와의 인연은 일주일간의 짧은 만남으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에 서 있었습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데 문 너머 익숙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육사 정복을 입고 차렷자세를 한 그는 5년 전 제게 부끄러움을 선사한 바로 그 남학생이었습니다.
 ‘아는 척을 할까? 날 못 알아보면 어쩌지? 뭐라고 말하지?’ 그날 따라 저는 왜 머리도 안 감고, 이상한 옷을 주워 입고 나온 건지…. 갈팡질팡하다 다음 정거장에서 인파에 밀려 내리는 그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후회를 하다 싸이월드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봤습니다. 사진첩을 둘러봤지만 이번엔 ‘여친’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몇 번을 쓰고 지운 끝에 ‘나 기억하니?’로 시작하는 쪽지를 보냈고, 이틀이 지나 그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종종 제 생각을 했다는 거짓말(?)과 함께 다음 주말 만나 밥이나 먹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연인이 됐습니다.
 10년 가까운 연애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사귄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제가 교환학생으로 1년간 한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인터넷 화상전화나 e메일로 그리움을 달랬습니다. 육군 장교인 그가 강원도 철원 휴전선 감시초소(GP)에서 근무할 땐 석 달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더군요. 지난해까진 미국으로 위탁교육을 받으러 간 그를 2년 동안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쓰다 보니 저도 어떻게 만나고 이어왔나 싶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저희에겐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끔 힘들어하는 제게 “세상에 남자는 많다”고 농을 해가며 밥과 술을 사준 선후배들 덕에 그리 외롭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10월 8일 드디어 낡은 고무신을 벗고, 새 꽃신으로 갈아 신습니다. 꽃신을 신고 신랑과 함께 걷는 길이 꽃길이라 여기며 평생 잘 살겠습니다.

 

일시: 2016년 10월 8일(토) 오후 5시

장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430 파크루안

허정연 기자
첨부파일
이어서 읽기 좋은 콘텐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