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출입기자와 직원의 만남… "몰래 데이트로 사랑 키웠어요"
중앙사보 2016.11.24

웨딩스토리. 중앙일보 지역뉴스데스크 김준희 기자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기사를 써야 할 것 같은데….”
 7월 7일 오후 7시 전북 전주시 효자동의 한 커피숍.
 낭패였습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소개팅 자리에서 급히 어떤 사건에 관한 단신기사를 처리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미 불혹(不惑)의 나이. 세상 일에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이 흐려지지 않을 때라지만, 등에선 땀이 흘렀습니다. 속으로 ‘오늘 소개팅도 망쳤다’고 낙담했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기사부터 쓰세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심지어 소개팅녀는 웃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 뭐지?’
 처음엔 ‘스튜어디스의 미소’와 비슷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개팅 주선자가 마흔 살 노총각이 출입하는 전북도청 모 과장이었고, 소개팅녀는 그 과장과 친한 계장의 ‘직속 부하’였기 때문입니다.
 노트북을 두드리던 30분간 소개팅녀는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식은 커피가 이렇게 달달할 줄이야.’ 7월 7일에 만난 두 살 차이의 ‘견우와 직녀’는 그날 자정까지 오작교 대신 도심 거리를 산책하며 서로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저희는 같은 도청 지붕 밑에서 일했지만 ‘몰래 데이트’를 했습니다. 나이가 적지 않은 만큼 인연이 불발(不發)되면 서로 후유증이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틈틈이 접선했습니다. ‘007 작전’처럼 도청 복도나 휴게실 등지에서 스치듯 만나 인스턴트 커피나 초코바를 주고받는 식이었습니다. 5분도 안 되는 ‘반짝 데이트’이기 일쑤였지만 그래서 더욱 애틋했습니다.
 취재 때문에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거나 저녁 약속을 못 지키더라도 ‘직녀’는 보채거나 화내지 않았습니다. 첫 만남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던 모습은 ‘직녀’의 천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만난 지 다섯 달 만에 결혼을 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지난 9월 추석 연휴 때 양가에 인사드리자 부모님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올해를 넘기지 말라”는 특명을 내렸습니다. 당초 교제 사실을 알리는 차원에서 가볍게 생각한 일이 상견례로 커진 겁니다. 양가 부모는 예비 며느리와 사위를 처음부터 ‘구세주’라고 부르며 애지중지하십니다. 이 덕분일까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다툰다고들 하는데 저희는 아직까지 언성을 높인 적이 없습니다.
 결혼식은 12월 4일 신부의 고향이자 ‘춘향전’ 탄생지인 전북 남원에서 합니다. 견우와 직녀처럼 어렵사리 시작한 사랑이지만 이몽룡과 성춘향의 ‘해피엔딩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 가라는 하느님의 계시 아닐까요? 엄혹한 시절이다 보니 선후배님들의 ‘축하한다’는 한 말씀이 큰 버팀목이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탄 배가 순항(順航)할 수 있도록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세요.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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