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클래식을 울컥하는 감동으로…'고품격 하모니' 호평
중앙사보 2016.12.15

팬텀싱어 제작 뒷얘기
한국판 '일 디보' 프로젝트

새로운 장르 포기않고 도전

 

JTBC 예능 프로그램 ‘팬텀싱어’의 MC 전현무(오른쪽)와 김희철이 찍힌 포스터. ‘팬텀싱어’는 남성 4중창 그룹을 결성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9시40분에 방송된다. 시작은 질투였다.
 언젠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다. 그 유명한 프로듀서 사이먼 코웰이 “그동안 공들여 준비한 새 그룹을 데리고 나왔다”며 호기를 부렸다. “이 그룹을 위해 미국은 물론 유럽 전역을 돌며 노래 좀 한다는 친구들은 다 만나고 다녔다.
 그간 길에 뿌린 돈과 시간이 얼마였는지 모른다”는 생색과 함께.
사이먼 특유의 허풍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말끔하게 슈트를 차려입은 네 명의 남자들이 등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의 질투를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다국적으로 구성된 그들은 정말이지 대륙을 횡단하며 건져 올린 보물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일 디보(Il Divo)’였다. 
 올봄 제작진은 히든싱어 시즌 4를 마치며 가졌던 휴지기를 끝으로 다시 모였다.
 새로운 음악 프로그램 기획이란 전제하에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렇지만 예의 ‘기획회의’란 것이 그렇듯 몇몇 아이디어가 반짝 주목받다 지리멸렬해지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나온 것이 ‘팬텀싱어-한국판 일 디보 프로젝트’였다. 일 디보처럼 근사한 외모의 노래 잘하는 4인조 크로스오버 그룹을 만들자는 게 골자였다.
 일 디보를 아는 사람도 있고 금시초문인 사람도 있었다. 용케 흥미를 보였다가도 이내 제기되는 우려들이 있었다. ‘오페라 아리아, 팝페라, 뮤지컬 넘버, 가곡, 가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노래하는 크로스오버 그룹이라니!’ 뜻은 좋지만 방송 프로그램으로 다루기에 클래식은 어렵다는 건 부인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K팝 위주 음악 예능이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컸다. 또 ‘클래식’이라고 하는 미개척 분야에 대한 콘텐트 선점의 의미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엔 못내 아쉬웠다.
 치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 제작진은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참가자들이 ‘일 디보’처럼 굉장히 매력적일 것. 또 클래식은 지루하다고 느낄 겨를이 없게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를 것.
 과연 그런 남자들이 있을까. 조마조마하게 시작된 예심 레이스. 오디션장의 문을 두드리는 참가자들의 위력은 대단했다. 해외 유학파, 뮤지컬계 라이징 스타, 독학파 가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꽃남자’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그들의 노래는 난생처음 듣는 아리아라도 지루하지 않았고, 뜻을 알 길 없는 노래를 불러도 감동을 줬다.
 마침내 11월 11일 우여곡절 끝에 ‘팬텀싱어’는 첫 전파를 탔다. 결과는 제작진을 울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팬텀싱어, 여기 예술의전당 아니죠? TV 앞이죠?’ ‘팬텀싱어, 공짜로 듣는 게 미안한 고품격 하모니’ 같은 호평이 잇따랐다. 첫 방송 1.6%로 시작한 시청률은 이후 2%대를 넘어 3%대에 안착했다. 시청자들은 반색했고, 포털과 음원 사이트엔 참가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부른 노래가 검색어로 오르는가 하면 클래식 차트에서 당당히 1위를 기록하는 노래도 나왔다.
 ‘팬텀싱어’의 순항 이면엔 사실 서글픈 현실도 있다. 이토록 놀라운 노래 실력을 갖고도 지금껏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오페라의 유령’ 속 그 ‘유령(phantom)’처럼 살아야만 했던 실력파 젊은이가 너무나 많다는 얘기다. 밥도 잠도 부족한 나날의 연속이지만 ‘팬텀싱어’가 더욱 인기를 끌어 최후의 4인조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그룹으로 종횡무진할 수 있길 바라본다. 일 디보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날을 위해 제작진 모두는 기꺼이 ‘풍찬노숙(風餐露宿)’ 하리라. 노윤 작가·팬텀싱어

노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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