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초인종 소리 후 나누는 저녁 한 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이야기
중앙사보 2017.02.09

JTBC 한끼줍쇼 촬영 뒷얘기

1. 식사를 마친 집에서는 밥을 얻어먹지 않는다.
2. 길에서 받은 음식은 끼니 전에 먹지 않는다.
3.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불편해하면 철수한다.
4. 초인종을 누르는 시간은 오후 6~8시까지.
5. 밥을 얻어먹지 못할 경우 편의점에서 그 동네 주민과 함께 밥을 먹는다.


함무라비 법전보다 더 까다롭다는 ‘한끼줍쇼 법전’은 ‘구걸에도 수칙이 있다’는 원칙 아래 매회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를 이끄는 ‘규동 형제’(이경규·강호동)가 자신들의 수족 이윤석·이수근과 함께했던 11회 서울 종로구 평창동 편(지난해 12월 28일 방영). 수차례 거절 끝에 환대를 받으며 어느 가정집에 들어갔다. 식탁 위에 진수성찬이 남아있었지만 막 내려놓은 숟가락과 함께 빈 밥공기를 보자마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만 했다. 왜? 이미 식사를 마친 집에서는 ‘한끼’를 요청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9일 전파를 탄 4회 서울 강동구 암사동 편. 호탕한 주인아저씨 덕분에 첫 집부터 기적처럼 입성에 성공했지만 외향적인 남편과는 달리 숫기 없는 부인은 밥상만 차린 후 한사코 남편과 규동 형제만 식사를 하라고 했다. MC도 제작진도 당황했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불편해하면 철수한다는 원칙 때문에 다음 집을 찾아나서야 했다.

 몇 차례 도전 끝에 이전 집과는 정반대로 여장부 스타일의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오케이!”를 받았다. 그 덕에 40년차 금실 좋은 부부와 한 끼를 나눌 수 있었다. 이날 퇴근길 MC 강호동이 제작진에게 남긴 말은 이랬다. 


“퇴짜를 맞았다고 절대 실망하거나 슬퍼할 이유가 없다. 우리에겐 다음 집이 또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한끼 구걸’을 시작한 것은 무모한 시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숟가락 하나만으로도 배포 좋게 나설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왜선 330척에 맞서는 12척의 배가 있었던 것처럼 첫 번째 집에서 거절당해도 우리에게는 초인종을 누르고 노크를 할 집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에는 동네에서 마주치는 유명 인사들이 프로그램 속 또 다른 볼거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이런 우연 이 반복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물론 제작진도 스타와의 조우를 매번 꿈꾼다.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가면 그 동네에 사는 송중기와, 평창동에 가면 서태지나 윤종신과,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에 가면 인근에 카페를 연 유아인과 마주치길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런 우연은 흔치 않다.

 그래도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라고 했던가. 제작진은 필연처럼 다가올 우연의 다리를 만들기 위해 동네와 게스트 선정에 최대한 공을 들인다. 온 가족이 함께 있을 크리스마스 저녁에는 아이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아이돌 걸그룹 ‘구구단’의 김세정을, 서울 양천구 목동의 굳게 닫힌 아파트 문을 열어야 할 때는 목동 출신의 언변 좋은 전현무를, 중국집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 마포구 연희동에는 연예대상 김종민과 함께 중국에서 온 ‘요즘 대세’ 성소(걸그룹 ‘우주소녀’ 멤버)를 섭외하는 식이다.

 인생이 재미 있는 이유는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듯 한끼줍쇼가 재미있는 이유 역시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띵동’ 초인종 소리 이후 열리게 되는 마법 같은 세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12척의 배, 아니 그저 새로운 동네와 수많은 초인종들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규동 형제도, 제작진도 힘겹지만 녹화 날이 기다려지는지 모른다.

 MC 이경규는 매주 이런 말을 한다. “벨을 누르기 전까지는 춥고 배고프고 암담하지만 벨을 누르고 문이 열리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밥 한 끼 나눴을 뿐인데 한 사람의 인생과 마주하게 된다. 우연히 들어간 능동의 예비 신혼부부에게는 결혼 축의금까지 전달했다. 벨을 누르기 전엔 그곳에 누가 사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신여진 작가·한끼줍쇼

신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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