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대통령’ … 4분 30초 동안 856컷, 역사의 순간을 찍다
중앙사보 2017.03.09

김성룡 기자의 한국보도사진전 최우수상 수상 소감

 

사진기자 초년병 시절 대통령 참석 행사장에서 ‘근접’ 완장을 찬 청와대 출입기자 선배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꼭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0여 년 취재 현장을 누빈 끝에 2016년 1월 나도 청와대 출입기자가 됐다.


근접 완장 대신 붉은 끈이 달린 취재 비표를 목에 걸었다. 이 비표를 목에 걸고 10개월간 청와대 출입기자로 미국ㆍ프랑스ㆍ아프리카 순방까지 동행 취재했다. 사진기자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와 양복에 익숙해질 때쯤 미르ㆍK스포츠재단 사건이 터지면서 나의 청와대 출입기자 생활도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특히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특종 보도가 있었던 지난해 10월 24일은 최대 변곡점이 됐다. 바로 다음날 박 대통령은 1차 대국민 담화를, 11월 4일엔 2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진화에 나섰지만 광화문에선 촛불이 계속 들불처럼 번졌다.


 지난해 11월 29일 박 대통령의 마지막 대국민 담화가 열린 날 나는 청와대 당번이었다. 10개 신문사가 청와대 사진기자단으로 매일 두 명씩 당번제로 청와대 일정을 취재하는데, 내가 당일 취재 순서였던 거다. 5분 대기조처럼 긴장하고 있었는데 대변인의 문자가 왔다.


‘[알림]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오후 2시 30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예정입니다.-대변인’

 


 카메라를 챙기면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세지는 광장의 촛불, 소득 없었던 국회의장 면담, 특별 검사 임명, 신임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의 사의 표명 등 박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자처한 대국민 담화였기 때문이다.

춘추관 2층 대브리핑룸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 보디 하나엔 300mm 렌즈를, 나머지 하나엔 80-200mm 렌즈를 장착했다. ‘이렇게 역사의 한순간을 기록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평소 잘 나지 않던 땀이 손바닥에 흘렀다. 예고된 2시30분에 정확히 박 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퇴장까지 4분30초가 걸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찍은 사진은 총 856장. 초당 3.1컷을 찍었다. 고개를 숙이거나 뒤도는 모습, 연단 뒤로 사라지는 모습까지 쉼없이 셔터 버튼을 눌렀다. ‘물러나는 대통령’이라는 사진 콘셉트를 잡았고, 내일 하루만 쓸 사진이 아닌 역사에 남을 사진을 찍고자 했다.

다음날 신문 1면엔 고개를 돌리는 대통령의 모습이 나갔다. 질문하려 손 든 기자를 외면하고 퇴장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1면에 실은 다른 일간지들과 차별화됐다. 결국 한 해를 정리하는 한국보도사진전에선 최종 3점의 대상 후보까지 올랐고 결국 최우수상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아니라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 할 정도로 운이 좋았다. 수많은 출입처 중 대통령 탄핵 국면에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하면서, 대국민 담화가 열린 날 취재 순서가 돌아올 확률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늘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중앙일보 식구들, 특히 포토데스크 변선구 부장 이하 부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김성룡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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