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들 쫓아다닌 반년… '반퇴(半退)' 신조어 사전에 올라
중앙일보 중앙사보 2015.04.06
묵은 테마 '베이비부머 퇴직' 막판까지 콘셉트 못잡아 고민 새 시각과 용어 도입해 대박

지난해 7월 초 세종시에서 서울로 복귀한 직후였다. 9층 전문·선임기자실에 정경민 경제부장이 들어왔다. 고정 출입처도 없이 어떤 기사를 써야 할지 막막했던 터에 정 부장은 은퇴 쓰나미를 심층 취재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동안 예고됐던 베이비부머 퇴직이 본격화하면서 사회·경제적 충격이 가시화할 것이란 얘기였다. 이때부터 바로 취재에 나섰다. 일단 통계부터 기획의도에 맞춰 새로 정리했다. 그랬더니 30년에 걸친 대규모 퇴직 쓰나미가 한국을 덮치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베이비부머 퇴직은 고장난 레코드판에 나오는 ‘올드 테마’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새로운 ‘야마’를 계속 찾아나갔다. 없던 것을 만드는 연금술(鍊金術)이나 다름없었다. 기본 기획안이 나오자 정 부장은 11월부터 취재팀을 구성해 네 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기획의 폭발력을 위해 홈페이지 구축과 광고 시너지를 위한 협업도 함께 진행했다. 최훈 편집·디지털국장과 정선구 경제에디터에게도 창간 50년 연중기획으로 낙점을 받아놓고 취재에 전념했다. 그러나 계속 개운치 않았다. 취재 내용이 업그레이드됐다고 해도 전체를 아우를 콘셉트 없이는 흘러간 레퍼토리의 반복일 뿐이어서다.

 

답은 6개월간 지켜본 퇴직자들의 행태에서 찾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베이비부머(Baby-Boomer)는 퇴직해도 은퇴하지 않거나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취재 막판에 집단 인터뷰를 위해 은평구 서울인생이모작센터와 금천구 상생아카데미에 갔을 때도 이런 행태가 다시 확인됐다. 그래서 떠오른 신조어가 ‘반퇴(半退)시대’다. 반년간 공을 들인 끝에 ‘킬러 콘텐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개념이 명확한 덕에 사회적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기사가 나가자 이른 아침부터 KBS·SBS·YTN·채널A 등은 중앙일보 1면을 직접 영상으로 소개하면서 반퇴시대를 조명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은퇴해도 못 쉬는 시대’라는 신조어가 추가됐다. ‘중앙일보 반퇴’라는 키워드를 치면 기사가 수없이 쏟아진다. 최근 동아일보는 ‘투자전략 포럼’ 사고를 내면서 반퇴시대를 앞세워 소개했고 한경·매경을 비롯한 전국 주요 매체도 기사와 칼럼의 소재로 반퇴를 쓰고 있다. 트위터에서도 반퇴기사가 흘러넘친다.

 

반퇴는 시대적 어젠다가 되면서 ‘안 걸리는’ 곳이 없다. 재취업은 물론이고 금융·증권·부동산과 관련해서도 반퇴를 얘기해야 주목을 받는다. 재테크와 경력개발 전문가들도 반퇴 개념을 앞세워 상품을 설명하는 건 기본이다. 서울·인천·광주·울산과 경기 수원·성남·고양은 인생이모작센터를 신설하거나 강화하고 있다. 반퇴 시리즈가  확고한 정책 근거를 제공하면서다. 강경식 전 부총리가 이끄는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 제휴를 요청해 왔다.


반퇴는 확장성이 크다. 편집국 공통 테마가 되면서 교육·결혼과 관련해 후속 시리즈가 나왔고, 펀드 세제와 관련한 시리즈도 나갔다. 지금도 후속작들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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